경총 근로기준정책팀은 지난 11월 8일 ‘통상임금 정책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다음은 세미나에서 발표된 내용 중 일부를 요약·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Ⅰ.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적용 판단기준

<발표 :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3년 12월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통상임금의 인정기준을 제시했다. 문제는 동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에 관행적으로 통상임금에서 배제되어 왔던 정기상여금이 전원합의체 판결 통상임금으로 확인됨으로써, 판결 이전의 ‘추가 법정수당에 대한 지급청구권’이 인정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이른바 강행법규 위반에 있어서 신의칙 적용 가부다. 오랫동안 노사 당사자 이익을 위해 단협을 통해서 임금에 대한 노사합의가 이루어져 왔는데 그 이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 종래 합의가 강행법규에 위반되는 것임이 확인됐다. 그때 비로소 종래의 합의가 강행법규 위반임을 알게 된 합의 일방 당사자가 스스로 형성해 왔던 합의가 강행 법규 위반임을 주장하면서, 이전의 합의당시에는 전혀 예측 할 수 없었던 추가법정수당을 청구하는 것이 과연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어 인정될 수 있는지가 가장 핵심이라 볼 수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원칙적인 ‘세 가지 일반 요건’과 ‘예외적 네 가지 특별한 사정’을 제시했다. 특히 전합 판결 이후 대부분의 하급심 판결이 ‘예외적 네 가지 특별한 사정’과 관련, ‘중대한 경영상 위기 기업 존립 위태’라는 특별한 사정을 가지고 경영상 지표에 의존해서 신의칙 적용 가부를 판단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법관이 경영상 지표나 사실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경영상지표를 신의칙 적용 가부 결정 기준으로 삼는 법관 태도를 존중한다 해도, 기업의 여러 가지 재정 상황과 복잡한 경영 문제, 현재와 미래의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서 판단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번 발표에서는 전체 법 질서 근간을 이룬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라는 관점에서 통상임금 신의칙 판단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신의칙 적용 요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우선 ‘외관상’ 신의칙을 적용하기 위한 원칙적인 ‘일반 요건’과 강행법규 위반에 따른 예외적인 ‘특별한 사정’을 구분하여 제시한다.

‘특별한 사정 네 가지’ 중 주로 봐야할 것이 근로자측이 예상 외 이익 을 추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예측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사정으로, 전합판결 이후의 후속 소송에서 많은 문제가 되고 있다.

신의칙의 위상과 구체적인 모습

우선 우리 법제에서의 ‘신의성실의 원칙’ 위상 부분을 간단히 설명하면, 신의칙은 사법 뿐 아니라 공법 등 모든 법 영역에서 전체 법질서를 수호하는 최후 보루의 역할을 한다. 특히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가 실현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문제다.

신의칙은 실효의 원칙, 사정변경의 원칙,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이라는 구체적인 3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모순행위금지 원칙’은 객관적으로 모순되는 선·후행 행위가 있어 그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고 선행 행위 때문에 야기된 상대방의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신뢰가 존재할 때 적용된다.

이에 의거해 전합판결 중 예상 외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사용자에게 예측 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부분을 살펴보자.

종래는 예측하지 못하다가 우연히 존재를 알게 된 청구권을 행사하는 근로자 측이 강행법규 위반, 노사합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청구권을 행사한 결과, 노사합의를 넘어서는 예상 외 이익을 우연히 추구하게 되었는지, 또 그로 인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 초래되거나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졌는지는 신의칙 원칙에 따른 법률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정들은 이른바 우연성이 본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연성과 관련된 부분은 단지 사후적이고 우연적인 사정, 또는 사실관계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근로자 측이 이러한 추가적 법정 추가 수당 청구로 인해 결과적으로 우연히 야기된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 기업존립의 위태로움은 법관으로 하여금 사용자 측의 침해된 신뢰가 특별히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보다 높은 수준의 신뢰라는 점을 확인시켜주는 역할 정도는 수행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유의해야 할 점은 이때에도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신의칙에 위반되었는지에 대한 법관의 법률적 판단은 사용자 측의 침해된 신뢰가 특별히 법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보다 높은 수준의 신뢰인지 여부에 결정적으로 근거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얘기하는 ‘특별한 사정’ 특히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의 위태로움은 사실상 기능적 관점에서만 이해되어야 한다.

신의칙 및 모순행위금지원칙의 본질론에 따른 강행법규와 신의칙 간 적용상 우위성

신의성실의 원칙

신의칙은 전체 법질서의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강행법규가 신의칙 적용에 대해서 극복 불가능한 한계를 설정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신의칙이 배제되는 법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행법규가 위반되었다 해도 개별 사례에서 법질서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를 유지하기 위해 구체적 합리성과 타당성에 근거하여 신의칙이 적용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강행법규에도 불구하고 신의칙이 적용될 수 있도록, 구체적 합리성과 타당성을 제시하고 신의칙 적용을 정당화시키는 예외적인 법률적 판단규준이 필요하다.

이때 ‘보다 높은 정도의 가치와 근거들’이 이른바 모순행위금지원칙이 적용되기 위한 ‘예외적인 법률적 판단규준’을 의미한다. 이러한 개념정의 하에, 특히 노동법 영역에서 강행법규 위반시에 일반적으로 신의칙 적용이 부정됨에도 불구하고, 개별 사례에 따른 구체적인 합리성과 타당성에 근거해 모순행위금지원칙이 적용되기 위한 ‘예외적 법률적 판단규준’을 독일법 이론과 판례에 기초해 검토해본다.

모순행위금지의 원칙

분명하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신의칙의 구체적 모습인 모순행위금지원칙이 대체로 강행법규에 의해서 규율되는 노동법 영역에 있어서도 ‘구체적 합리성과 타당성’에 근거하여 법질서의 대원칙인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를 위해서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에서 어느 일방의 선행행위를 통해 상대방이 정당하게 신뢰를 형성하게 된 경우에, 그 ‘정당한 신뢰’는 신뢰를 야기했던 자의 ‘모순된 이익’보다 더 높게 평가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로 인해 사용자측에 우연히 야기될지 모를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 존립 위태 등은 신의칙 위반 여부에 있어서 결정적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의칙 관련 대표적 하급심 판결들의 비판적 분석

대표적 하급심 판결을 분석해보면, 법관이 사실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중대한 경영상 위기나 기업 존립의 위태를 어떻게 바라보냐에 따라 신의칙 적용 가부가 결정되는 문제가 나타났다. 유형별로 구분을 해봐도 통상임금 전합 판결 이후에 하급심 판결에서 신의칙 적용가부의 판단기준이 명시적·확정적·통일적이지 않다.

먼저 기아차 1심 판결을 살펴보면, 신의칙 법리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 신의칙 위반 판단을 위한 본질적 요건과 파생적인 우연한 사정에 있는 사실관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법리적 판단과 사실의 파악을 혼동해서 자의적 결론이 내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보다 높은 가치의 신뢰의 충족을 존재를 확인함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과거의 경영상 지표라든지 가정적 추정적 경영상 예측에 기반하여 판단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가 있다.

자동차산업의 현실에 대한 법원의 오해

우리나라의 자동차 산업은 매우 대립적이고 경직적 노사관계로 인한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기아차 판결에서 법원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있다.

법원은 “상호신뢰를 기초로 노사합의가 이루어져 자율적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어 노사관계를 유지해 온 것을 고려하면 그들이 기업 존립 위태나 경영상 어려움을 결코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자동차 산업의 노사관계를 ‘상호 신뢰를 기초로 노사합의를 이루어 자율적이고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 온 것“으로 평가하고 인정하면서도 한마디로 수 십년 동안 임단협 과정 등을 통해 노사가 지속·반복적으로 제외해 온 정기상여금에 있어서 노사 상호간 깊은 신뢰의 존재를 애써 간과하고 있다.

대신 대부분의 하급심 판결에서 추가법정수당 청구로 야기되는 경영상 문제라는 우연한 사실관계를 법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기아차 1심 판결은 더 이상 법적 정당성을 담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항소심에서는 반드시 대법원 전합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전제로 다시 판단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현대중공업 사건의 2심 판결은 법리적 판단기준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적용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사후적 외부적 우연한 사실관계가 아니라, 전체 법 질서 신의칙 및 강행법규의 본질적 의미와 상호관계에 의한 판단을 하고 있다.

판단 부분에서 보게 되면 이른바 현대중공업 2심판결에서 추가법정수당 청구로 인해 나타날 경영 상황의 변화 그리고 현재 기업 상황 등을 종합적 고려해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기업존립 위태를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경영상 지표를 결정적인 법리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이러한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존립의 위태로움을 경제적 지표를 통해 목도함으로써 이른바 사용자측이 근로자측과 함께 가졌던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서 배제된다’는 신뢰가 특별히 법적으로 보호가치 있는 보다 높은 수준의 신뢰임을 확인하고 있다는 데서 매우 중요한 판단을 하고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강행법규 위반에서 신의칙 적용 가부 판단 기준은 중대한 기업 경영상 어려움이나 기업존립의 위태로움 같은 이른바 우연한 사정 내지 사실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수십년 간 노사 간 합의와 단협을 통해 공고히 갖춰진 신뢰라는 부분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 것이 신의칙의 결정적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전제로 전합판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있을 때 통상임금 소송에 대한 하급심 혼란들이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Ⅱ. 통상임금 확대가 자동차산업과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

<발표 : 김창배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

근로기준법 시행령을 보면 통상임금에 대해서 정기적·일률적 급여로 정하고 있다. 고용부의 통상임금 산정 지침에도 1임금 산정 기간은 통상 ‘월’로 계산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노조측에서 월 단위 임금지급은 근로자 생활안정을 위해 마련한 것이지 통상임금과 관계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임금산정에 있어서 어려움, 갈등이 발생했다.

이런 논쟁이 계속되면서 결국 2013년 대법원 전원 합의체에서 판결이 나왔고, 이로써 어느것이 통상임금이냐 하는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이 제시됐다고 볼 수 있다.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지급주기가 한달이 넘더라도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통상임금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문제는 소급 지급의무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동안 정상적인 단협에 의해 노사합의하에 임금을 지급해 왔지만, 통상임금 산정을 잘못 적용했다면 근로기준법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이기에 근로자 측이 소급청구가 가능하게 판결을 내린 셈이다.

그러면서 신의칙에 따라 소급 지급 의무를 기업마다 달리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고 이에 따라 신의칙 적용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대법원의 신의칙 적용 가부에 있어서 두 가지 조건 ‘예상 외 이익 추구’, ‘이로인한 예측 못한 재정적 부담으로 기업존립 위태’를 제시했는데 이는 주관적 판단의 개입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 과연 어느 정도가 예상외 이익추구인지 어느 정도의 부담이 기업을 위태롭게 하는지를 법원에서 판단 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신의칙 적용 여부 판단 근거가 기업의 누적순손실, 경영사정 악화 등이 되다 보니, 실제 법원에서는 가장 눈에 띄게 외관상 명확한 부분만 가지고 판결을 내리게 된다. 결국 기업에서 구조조정 절차가 개시되거나 당기 순손실이 지속되는 등 실제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는가의 여부에 따라 신의칙 적용 가부가 결정된다.

당기순손실, 구조조정절차 등은 결국 기업 미래 지급 능력 보다 기업의 현재 지급 능력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문제가 생긴다. 하지만 기업의 경영활동을 현재 지급능력으로만 봐야 하는지와 같은 부분은 법원에서 판단할 수 없다.

현대중공업 사례를 보면 조선업이 호황이었던 2010년~2012년 사이 1심에서는 소급 지급 판결을 내렸지만, 이후 조선업이 위태로워지자 2심에서는 소급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처럼 기업의 지급 능력은 거의 사후적으로만 판단이 가능하고 실제 사전적 적용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외관상 보이는 기업 실적으로 판단하게 되어 판결의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문제를 야기한다.

협상과 계약의 관점

경제주체들이 협상과 계약을 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윈-윈 추구’이다.
계약은 정의상 비협력적·비생산적 결과를 협력적·생산적 결과로 바꾸는 약속이다. 이러한 계약의 당사자들이 지켜줬으면 하는 약속들은 꼭 법으로 보호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노사가 합의한 임단협은 서로 간 도움이 되는 측면에서 한 약속이므로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어떤 사건으로 이런 계약이 깨진다면 계약법 관점에서 문제가 될 뿐 아니라 윈-윈도 깨지는 문제가 발생하므로 신의칙 원칙을 계약과 협상의 원칙에서 바라봐야 한다.

물론 이 계약이 서로 간 지위가 다른 상태에서 이루어졌다면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통상임금 소송 관련 사업장 대부분이 대규모 사업장이고, 이러한 대기업 노조가 결코 사측에 비해 협상력에서 뒤쳐진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근로자측은 사측과 동등한 협상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시켰을 때 추가 수당 부분이 많다는 것은 상여금의 규모가 컸다는 것인데, 상여금을 운영실적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근로자들이 이를 많이 가져갈 수 있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즉 그간의 임단협이 일방적 협상의 우위력에 의해 성사됐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계약에 흠결이 있는가?

대법원이 인정하다시피 임단협 당시 노사가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협상이 진행됐으므로 계약의 흠결은 전혀 없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사정에 대해 일방적으로 기업이 책임을 지라는 판결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동법에서 기본적 강행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기본적 근로조건이나 기존 관습에 비추어 열악하거나 어긋나는 계약일 경우 이를 무효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통상임금 소송 계약들도 노동법 강행규정으로 볼 때 무효화 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통상임금 문제에 있어서 강행 규정이 적용되지 않으면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이 크게 열악하게 될 수밖에 없는가를 따져보고, 굳이 강행 규정을 적용할 필요가 없는 상황은 아니었는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에 앞서 기본적인 근로조건이나 기존 관습에 어긋나는 계약이었는지도 한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추가수당 부담에 대한 경제학적 평가

기아차의 통상임금 소송 사례를 보면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임금 상승률은 평균 4.5%인 반면 이 기간 중 전체 임금 근로자의 임금 상승률은 평균 2.7%에 머물렀다. 심지어 금융 위기였던 2008년, 2009년에도 전체 평균 임금은 하락했지만 K사 임금은 상승 추이를 보였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평균임금 상승률보다 높은 임금 상승률을 보였다.

임금상승률 뿐 아니라 전체적 임금 수준도 높다. 2008년 기아차 평균임금이 우리나라 전체 평균보다 2.3배 높다. 2015년 에 오면 이것이 3배까지 높아진다. 최근에도 여전히 3배 가까이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임금을 소급 적용까지 해서 다시 한번 추산하면 훨씬 높은 평균 임금을 보일 것이고, 심지어 전체 평균 임금 대비 3.4배까지 높아져서 근로자 간 임금격차가 큰 폭으로 확대되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이처럼 강행규정이 적용되지 않아도 근로조건과 임금조건이 후퇴하는 것이 아닌데 굳이 강행규정을 들어서 기존의 임단협을 무효화 시켜야 하는가의 의문이 남는다.
또 한 가지는 신의칙 적용 가부 문제가 앞으로의 노사관계에도 굉장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그동안 통상임금에 포함되지 않아 온 상여금이 포함되게 되어 기업에게 채무가 발생하고 그런 문제가 앞으로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게 되었다. 이로 인해 노사 간 협상의 안정성이 깨져 협상 결과가 뒤바뀔 수 있어 정상적 노사관계가 어려워 당연히 법적 안정성에도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어떤 약속은 현재 행동 뿐 아니라 미래 행동에도 영향을 준다. 통상임금 판단 시 단지 현재나 과거만 보지 말고 미래를 보는 기업 운영, 노사관계 계약의 유용성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신중하고 합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

파급 효과

신의칙이 배제될 경우, 즉 통상임금 소급 지급 의무 발생 시 경제에 어떤 정도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해 보았다.

신의칙 적용이 배제되게 되면, 기아차의 경우 2008년 소송이 제기된 해부터 2017년까지 소급 지급액을 추산하면 법정수당은 4조 45억 원 정도로 추정된다. 향후 추가적으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서 수당이 늘어나게 되는 부분은 2조 5,107억 정도다. 신의칙 적용이 될 경우는 이 두 가지 금액을 합친 것 보다 작은 2조 5,107억 원을 부담하게 된다.

생산유발계수 이용해서 생산유발효과를 분석해보니 기아차에서 지급해야 할 금액을 보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16조 770억 원이며, 소급 적용하지 않을 경우 추정액은 6조 1,960억 원이다.
자동차 부품 업계는 소급 적용 시 약 3조 2천 331억 원 생산 감소 효과가 예상되며, 소급 지급을 하지 않을 경우는 1조 2,450억 정도로 축소된다.

부가가치 유발 효과

부가가치는 경제 전체적으로 소급 의무 발생시 4조 3,860억 원 부가가치 감소 효과가 예상되며 자동차 산업에만 1조 5천억 정도, 자동차 부품산업은 7천 770억 정도의 부가가치 감소 효과가 예상된다.

취업 유발 효과

소급 의무 발생 시 경제 전체적으로 볼 때 약 5만여 개의 일자리가 감소될 것으로 예상되며 자동차 산업으로 보면 18,500명 감소, 신의칙 적용 시는 7,100명 감소가 예상된다.

일자리 대체

지금까지 수량적으로 경제에 미치는 여러 가지 효과를 생산 부가 가치 고용의 측면에서 살펴 봤는데, 이 외에도 일자리 대체 효과가 예상된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서 일자리 문제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큰데, 일자리를 축소시킬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2016년 백악관에서 두 권의 관련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두 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과 일자리 대체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을 제공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가 4차 산업혁명, 특히 인공지능 기술의 힘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어떤 제도와 정책을 펼치는가에 따라 성장, 고용 등에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가 판가름 날 것이라고 한다.
보고서에서는 19세기 산업혁명은 미숙련 노동자한테 유리한 기술진보였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 인공지능은 숙련노동자에게 유리한 기술진보지만, 기술이 없는 미숙련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는 방향으로 기술진보가 일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임금 뿐 아니라, 기업의 노동비용이 증가한다면 기업이 대체할 방법은 임금이 낮은 곳으로 옮겨 가거나 자동화 하는 방법밖에 없다. 즉, 일자리 대체는 가속화 될 것이다.

특히 사전에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반복적 업무가 많은 직종일수록 컴퓨터에 의한 자동화로 대체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컴퓨터에 의한 일자리 대체 가능성이 80% 이상인 초고위험군 비중이 50% 넘는 것으로 나타나 노동 비용이 높아지면 자동차 산업은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보고서는 “기술은 운명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반드시 일자리 대체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어떻게 정책을 펴느냐에 달렸다”고 말한다.

기업, 정부, 개인의 결정 여부에 따라 기술이 일자리에 충격 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인공지능의 자동화 효과는 극대화하되 일자리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는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연구 결과와 권고가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통상임금 범위가 확대되고 신의칙 적용도 되지 않는 쪽으로 가면서 인공지능 산업혁명에 대처하지 못하고 오히려 일자리 대체가 가속화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현재 노동시장에 진입한 노동자에게는 임금 상승이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미래 세대는 취업 가능성이 점점 더 희박해지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임금양극화 문제를 통상임금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기업 규모가 클수록 고정상여와 월급 수준이 높다. 통상임금에 고정상여금을 포함해서 다시 계산해 보면 5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1년에 420만원 정도 추가적으로 임금이 올라간다. 대신 소규모 기업은 조금밖에 안 올라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도 마찬가지다.

즉, 대·중소기업 간 정규 비정규간 임금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고 양극화 해소에도 역행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인건비 부담 증가, 수출경쟁력 약화, 외국인 투자 유치 감소 등 기업경영 환경도 향후 더 불확실해지고 여러 문제가 발생 할 수 있다.

통상임금 신의칙 적용 문제와 관련하여 협상 계약 측면에서 보면 노사의 협상력이 동등했고, 노사 합의 시점에서 한 약속은 상호간 지켜지기를 원했으므로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또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배제는 비효율적 결과를 가져와 자동차산업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산업이 가지는 비중과 역할상 자동차 산업의 부담은 다른 산업과 경제 전체에도 큰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기계에 대한 일자리 대체 가속화가 우려되고, 우리 경제의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법원에서 우리 산업과 경제에 치명적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는 방향으로 최대한 해석하고 판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