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희 한국산업기술대학교 지식융합학부 교수

우리나라는 1991년 12월 152번째로 ILO에 가입했다. 가입 전부터 우리나라는 국제사회로부터 고도성장 국가로 평가받고 노동운동의 활성화로 국제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UN산하 16개 전문기구 중 우리나라가 가입하지 못했던 유일한 기구가 국제노동기구 즉 ILO였다. 결국 ILO가입은 ‘91년말 남북한 UN동시가입을 계기로 해결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어렵게 ILO 회원국이 된 데에는 당연히 특별한 이유도 있다.

ILO에서는 인권보장을 위한 보편적인 노동기준 관련 협약인 ILO 핵심협약을 채택해 왔다. 차별금지, 아동노동금지,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강제노동 폐지 관련 협약 등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는 차별금지, 아동노동금지 관련 협약 등은 쉽게 비준했으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강제노동 폐지 관련 협약 등은 아직도 비준하지 못했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관련 87호 협약과 98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회원국은 각각 18%와 12%이고 강제노동 폐지 관련 29호 협약과 105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회원국은 각각 5%와 6%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회원국이 비준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보편적인 협약을 왜 비준 못했을까.

우리나라에서 ILO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관련 협약 기준을 맞추자면 현행법상 기업단위 노동조합에 해고자나 실업자에 대한 가입 제한을 풀어야 하고 공무원과 교원의 노동단체권도 더 확대되어야 한다. 특히 강제노동 폐지 관련 협약 기준에 맞추자면 현행 의무복무 병역제도를 대폭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법 체제 하에서는 당연히 ILO에 가입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가입하던 해인 ‘91년 말 기준으로 현행법과 같이 초기업노조에도 2003년 대법원 판결이 등장하기 전까지 실업자와 해고자 조합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었고 2006년에 제정된 공무원노조법과 2007년에 제정된 교원노조법에 따른 공무원과 교원의 결사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ILO 가입 이후 30여년이 도래하는 지금에서도 우리나라의 기초적인 노사관계 환경으로 핵심협약 비준이 어렵다는 데에 있다. ILO핵심 협약 비준의 추진은 당연히 필요하고 대통령 공약사항으로 해 볼 수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핵심협약 비준에 장애로 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관행이나 실태에 기초한 노동 환경과 여건을 고려하여 추진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가 단결권 및 결사의 자유 관련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못하는 노동환경의 특징은 노동조합 조직 내지 노사관계 체제에 있다. 단결권 및 결사의 자유 관련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한 유럽의 노사관계는 오래전부터 형성되어 온 산업별 노동조합 조직 내지 산업별 노사관계 체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노동환경 하에서는 당연히 노동조합 조직은 기업외부에 존재한다.

더욱이 노동시장 독점을 노리는 노동조합 운동으로부터 애초부터 실업자를 당연히 노동조합의 조직대상으로 해 왔다. 또 처음부터 기업외부에서 자란 초기업 노동조합의 조직과 운영도 당연히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노조전임자 급여지원 같은 노동관행 내지 관념은 없다.

이에 비해 국내의 노동조합 조직 내지 노사관계 체제는 오래전부터 기업별 노동조합 조직과 기업단위 내에서 교섭체계를 구축해 왔다. 노사 간의 관심사 자체도 기업내부의 경영환경을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2003년 대법원 판결 이후 초기업노조에는 실업자도 가입할 수 있고 이들이 초기업노조 활동에 머무는 한 전국적 노동조합 조직률에는 긍정적이었지만 기업내 노사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유럽의 노사관계와 같은 환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 ILO에서 비판적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노조전임자 급여지원도 초기업 노동조합 조직보다는 주로 기업단위 조직에서 곤란한 문제로 되어 왔다. 노조전임자 급여지원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상당한 진통 끝에 현행 근로시간면제제도로 개편하고 거의 정착단계에 이르렀다. 이런 문제는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환경들이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이상하리만큼 선진국인 미국도 결사의 자유에 관한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그러나 이 현상도 단순히 미국의 파워 때문만으로 넘어가기는 부족하다. 미국 역시 연방과 주와의 관계 등 미국 내의 노동환경에 따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들 때문에 경영계에서는 핵심협약의 비준을 추진하더라도 비준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어권을 요구하고 있다. 파업시 대체근로 금지 규정 삭제,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 삭제, 사업장내 점거 파업금지 등이 그러하다.

아마도 평시의 주장이라면 노동기본권 축소 등의 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아젠다들이다. 그러나 기업내 노사관계 현장에서 해고자 등을 포함한 노사관계 분쟁이 험해지는 등 사업장내 노사관계가 불안정해짐에 따라 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지렛대로서 경영계의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경청할 부분도 인정하고 접근해야 한다. 요컨대 핵심협약 비준시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지형에 큰 영향을 줄 가능성에 대한 균형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최근 한-EU FTA 핵심협약 이행 노력 노동조항 위반 분쟁절차 이행으로 경제보복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만일 한-EU 간 노동조항과 관련한 정부 간 협의가 잘 마무리되지 않고 전문가패널로 이행되는 등으로 발전하고 우리가 패소할 경우 FTA 노동조항 관련 최초의 패소 사례로 될 수 있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평판에 부정적임은 물론 다양한 경제보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확실히 EU로부터 핵심협약 비준이라는 높은 압력을 받고 있고, 무엇보다 FTA 체결국 중 최초의 노동조항 위반 패소 국가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EU 노동조항 관련 분쟁 해결에 대해 면밀한 대응이 필요하다. EU측이 먼저 체결한 한-EU FTA 노동조항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면 나머지 EU와 다른 나라가 체결한 FTA 협정들에서 발생하는 노동조항 관련 분쟁 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이 EU측으로 하여금 노동조항 위반의 FTA 분쟁 절차를 험하게 몰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분별력 있는 검토도 필요하다.

한 나라의 ILO 협약 비준 정책이 국익이나 국제경쟁에서 비껴 나 있는 것은 아니다. 치열한 국가 간의 이해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비록 ILO 핵심협약이 국제적 보편적 기준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할지라도 그 비준에 따른 부담은 당연히 국내 산업이 지는 것이므로 이기적인 고민도 할 줄 알아야 한다. 핵심협약 미비준에 따른 한-EU간 FTA 노동조항 관련 분쟁 패소라는 노동외교적 부담이 어느 정도인지와 핵심협약 비준시 우리 산업이 치루어야 할 대가가 어느 정도인지 비교 분석하는 냉철하고 이기적인 검토와 이에 기반한 치밀한 협약비준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