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허 윤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한국 경제가 표류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의 심화와 일본의 대한 수출규제 강화가 장기화되고 중국과 미국 및 EU를 포함한 우리 주요 교역국들의 해외 수요마저 위축되면서 한국호는 짙은 안개에 휩싸여 시계 제로의 위기 상황을 맞았다.

더 큰 문제는 선박 내부에 있다. 정부의 각종 반기업적 정책과 규제에 눌려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있다. 특히 노동 시장의 경직성이 강화되고 환경 문제에 대한 감성적 접근이 횡행함에 따라 ‘헬조선’은 이제 청년이 아닌 기업가들의 비명 소리가 되었다.

그 결과 올해 설비투자는 2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고 수출 또한 3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2019년 경제 성장률 또한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인 1%대로 추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선박 기계실에서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지만 불 끌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우리의 참담한 현실이다.

만약 미·중이 환율 전쟁을 본격적으로 벌이는 와중에 우리 기업들은 일본산 소재를 제때 조달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면 우리 경제 성장률은 0%대로 주저 앉을 수도 있다. 즉, 미·중과 한·일이 모두 격돌한다면 한국은 외환위기와 금융위기에 이어 제3의 경제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7월 1일 일본 정부가 일본 수출 관련 외국환 및 외국무역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한·일 경제 갈등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국 정부는 8월 22일 ‘지소미아 종료’라는 카드를 던지며 일본의 수출규제 개정안 철회를 요구했지만 8월 28일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의 시행에 돌입했다. 물론 절차가 까다로와졌을뿐 아직 일본의 실질적인 금수조치는 없다. 하지만 향후 정치적 충돌 여하에 따라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일본에 대한 수출 규제가 수출 금지로 현실화된다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산업별 타격 정도는 다르겠지만 그 파급효과는 상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장비나 소재 등 기계 및 IT 산업은 단기 대체가 쉽지 않아 국내 생산에 큰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반도체 일부 장비(식각, 노광, 증착)와 소재(웨이퍼, 블랭크마스크)나 차세대 공정용(EUV) 소재 등은 한·일 기술력 격차로 인해 일본산 대체가 어려워 그 충격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자동차, 철강, 조선 등 여타 주력 산업은 수입 대체나 국산화 가능성이 열려 있어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핵심 소재·부품 100개의 국산화에 방점을 두고 통 큰 R&D 지원과 중소기업 판로 확보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조달비용에 있다. 설령 기술적으로 일본 소재를 대체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규모의 경제와 학습 효과 및 차세대 혁신 제품 출시와 표준 선점 등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일본 기업의 동태적 비교 우위를 국내 기업이 몇 년 사이에 모두 뒤집기란 역부족이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오히려 ‘병주고 약주는’ 정부의 대응 방식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국산화란 지난한 작업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부가 앞장서 빠른 시일 내에 일본과의 관계를 원상 회복 시키길 이들은 원하고 있다. 올해 10월 하순 부산에서 열릴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양국 정상의 미래지향적 결단이 필요한 이유이다. 그리고 그 협상의 타결은 징용공과 위안부 문제에 대한 양국 정상의 전향적·포용적 입장의 수용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은 과연 우리의 적인가? 그렇지 않다. 지난 1965년 한·일수교 이후 한·일 경제협력은 한국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양국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 보완 내지는 상생의 관계를 형성·유지하고 있다.

물론 한국은 일본보다 중국에서 더 많이 중간재를 수입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수입하는 중간재는 중국산 범용재가 아닌 기술력이 뛰어난 핵심 소재와 부품이 많다는 점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의 효용을 더하고 있다. 양국은 제조업 분야에서 제3국 공동 진출을 수없이 꾀하였고 민간 차원의 기술 교류를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그리고 미국의 동맹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진 이웃 두 나라가 국내정치적 요인들에 의해 반일과 반한을 강요당하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향 후 한국 경제는 미·중, 한·일 갈등의 전개 양상과 함께 아래 변수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환율인데 최근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한국과 대만, 중국을 차례로 환율조작국에 지정한 바 있다. 당시 시장 환율은 원화와 대만 달러화 및 중국 위안화 모두 6~15% 절상되었다. 만약 중국이 미국과 강대강 맞선다면 위안화 약세 나아가 원화의 동반 약세가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 연준의 공세적 금리 인하나 미·중 환율조정 가능성은 환율의 하락 반전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둘째는 금리다. 미 경제가 피크를 지나 성장률이 둔화되면서 연준은 연내 추가 2-3회의 추가 금리 인하를 예고하고 있다. 올 들어 미국, 한국, 중국 등 17개국이나 금리를 인하했다. 이는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다. 한국 또한 4/4 분기 중 추가 금리 인하가 확실시 된다. 내년 상반기에는 1.0%-0.75%까지 금리가 내려갈 수도 있다. 자본유출의 우려가 크지 않고 주요국의 금리인하가 동반되는 가운데 한·일 경제전쟁까지 심화된다면 0%대 금리도 배제하기 어렵다.

기업 측면에서 본다면 시나리오별 비상경영계획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장 위주의 과도한 외형 확대보다는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내실 경영에 집중하는 전략이 유효해 보인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 공급망 조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해외 자산과 거래처 및 경영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각국 사업별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고 지역별 위험요소에 대한 분석과 해법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홍콩 사태의 경우 홍콩을 경유하는 대중 간접수출이나 금융상품에 대한 투자 손실 혹은 대홍콩 자본조달 문제를 심도있게 들여다보고 위험전이요소를 차단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일본의 경우 소재·부품 금수조치와 함께 일본계 자금이 한국에서 대거 유출되는 경우도 상정하여 엔화 자금 조달 문제와 이와 관련된 일본과의 직·간접 비즈니스 및 각종 지분·제휴·협력·특허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 대책이 나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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