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노동경제연구원은 11월 26일(화), 「새로운 일하는 방식의 등장과 근로시간제도의 다양화」을 주제로 제26회 연구포럼을 개최하였다. 금번 포럼은 영국과 우리법체계 간 비교를 통해 0시간 계약, 플랫폼노동 등 최근 주목을 끌고 있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의 국내법상 수용가능성과 향후 일하는 방식의 변화와 맞물려 우리법제의 나아갈 방향에 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하였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이 발제를 맡았으며, 이하 본문은 발제 내용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우리법제와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영국은 노동유연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은 당사자 간 계약을 존중하는 문화를 바탕으로, 사회보장은 국가의 책임으로, 노사관계는 노사 양당사자의 책임으로, 근로계약 관련 사항은 법제적으로 책임을 분화시키는 방식으로 각 책임을 다층화 함으로써 유연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정근로시간이 없는 소위 0시간 계약의 형태도 가능한 것이다.

반면 우리는 사회보장과 노사관계, 근로계약상 책임 모두를 근로계약 당사자인 사용자와 근로자가 부담하고 이에 법이 엄격하게 관여하는 방식을 택하여 상대적으로 경직된 체계를 갖고 있다. 이는 일하는 방식이 점점 더 다양화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일하는 방식에의 적응력을 떨어뜨린다. 당장 0시간 계약만 하더라도 소정근로시간을 요구하는 현행 시스템하에서는 적용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기존 노동법체계로 포섭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은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당면하고 있는 노동법적 과제이다.

상대적으로 유연성이 높은 영국의 제도를 살펴보는 것은 향후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관해 시사점을 준다. 영국의 시스템이 어떻게 새로운 일하는 방식을 기존 체계로 포섭하고 있고 또 포섭할 수 있는지, 크게 4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플랫폼노동과 근로자성

영국 역시 플랫폼노동이 확산 중이다. 영국 노동법제는 고용형태를 크게 ‘근로자(employee)’, ‘노무제공자(worker)’, ‘자영업자(self-employed)’로 구분하는데, 2018년 조사에 따르면 이들 3형태와 파견근로를 제외하고 전체 취업자 중 ‘0시간 계약’종사자가 2.8%, 긱 이코노미 워커가 4.0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0시간 계약이나 긱이코노미가 꽤나 보편적인 일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이 우리와 다른 점은 기본적으로 고용형태를 3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근로자(employee)이어야만 원칙적으로 개별법과 집단법을 적용받을 수 있는 반면, 영국은 고용형태를 ‘근로자(employee)’, ‘노무제공자(worker)’, ‘자영업자(self-employed)’로 구분하여, 즉 중간영역으로서 집단법의 전부와 개별법의 일부를 적용받는 ‘노무제공자(worker)’라는 개념을 두어, 전형적인 근로자이거나 자영업자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자들을 모두 중간영역(노무제공자)에서 포섭한다.

노무제공자는 사용자의 지휘통제권이 미치는 정도‧노무제공의 비대체성의 정도 등의 측면에서 근로자에 비해 종속성이 약하다. 이런 특성 때문에 노무제공자에게는 집단법의 경우 근로자와 동일하게 적용되나, 개별법은 선별적으로 적용(근로시간법, 단시간 근로보호, 평등법상 권리, 최저임금법 등 적용)된다. 전형적인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노동법제의 보호를 상당부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근로자성에 관한 논의가 그다지 치열하지 않다.

근로자성에 관한 판단으로 국내에도 제법 알려진 바 있는 Uber 사건( Uber BV v Aslam & Others, UKEAT/0056/17 (10 November 2017))이나 Deliveroo 사건 (WGB v Deliveroo, CAC, TUR1-985(14 November 2017))의 경우에도 엄밀히 말하면, 근로자성(employee)이 아니라 노무제공자성(worker)의 판단이 문제된 사건이다.

종래 이런 3분 분류방식에 대해 비판이 있었으나, 근래 고용형태가 다양화되면서 오히려 이와같이 중간영역을 두는 입법방식이 변화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비전속적 노무제공형태의 규율

영국 법률은 호출형 계약에 대해 2015년 직접적인 법적 규율을 시작했다. 호출형 노동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0시간 계약에 관해 그 정의규정을 신설하고, 특정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 합의를 금지하는 내용이 중심이다(영국은 2015년 중소기업고용법(Small Business, Enterprise and Employment Act 2015)을 통해 고용권법(Employment Rights Act)을 개정하였다(고용권법 제27조의A와 제27조의B)).

법은 호출형 계약(zero hours contracts)을 ‘사용자의 재량에 따라 조건부로 일을 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 또는 어떤 업무와 서비스를 언제 제공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실성이 없는 경우’라고 정의하였다. 그리고 ‘전속성 합의는 구속력이 없다’고 하여 다른 계약이나 여타의 형태로 일하는 것과 복수의 사용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고, 노무제공 요청에 대한 거부권을 보장하였다.

이러한 법률의 내용은 플랫폼 노동의 전형적인 특성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와 같이 0시간 계약을 공식화 하는 방법을 통해서도 기존 법률이 플랫폼노동을 포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포괄적 사회보험제도를 통한 보완

우리나라가 근로자 지위와 사회보험을 연동하고 있는 것과 달리, 영국은 사회보험 가입대상을 노동관계법령의 적용대상과 구분하여 독자적으로 설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국민보험이라는 제도를 통해 영국에 거주하는 16세 이상인 고용소득자 모두에 대해 보험가입의무(기여금 납부의무)를 부과한다.

근로자성 여부가 사회보험의 적용에 있어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고용소득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사회보험의 대상이 되므로, 플랫폼노동 종사자도 당연히 사회보험가입의무를 부담하고 그 보호를 받는다. 보험요율에 있어 근로자(employee)냐 자영업자(self-employed)냐에 따라 보험요율에서 일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이에 관한 조세당국의 판단에 대해 크게 사회적 갈등이 표출되는 것도 아니다.

유연근로시간제를 통한 일하는 방식의 다양화

영국은 원칙적으로 주당 실근로시간의 상한을 48시간으로 정하고 있으나, 전면적인 Opt-out 제도를 통해 사업장단위에서 노사 합의 시 3개월의 기간을 평균하여 1주 최대 60시간까지 근로하는 것을 허용한다.

또한 과거에는 대기시간=근로시간으로 보던 관념에서 벗어나, 현재는 대기시간을 ‘활동적(active) 대기시간’과 ‘비활동적(inactive) 대기시간’으로 나누어, 전자의 경우에만 근로시간으로 취급한다. 이처럼 기본적으로 근로시간 시스템 자체가 유연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에 더해 개인단위에서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추구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되어 있다. 근로자 개인은 육아, 가족간호, 돌봄 기타 개인적 필요성이 있는 경우 사업주에게 근로시간의 단축, 근로시간대 변경, 근로장소의 변경 등을 요구할 수 있으며, 사용자는 근로자의 청구에 대해 검토할 의무를 부담한다.

다만 사용자에게 과다한 추가적 비용 발생, 신규인원 충원 필요성, 업무수행 불가능, 구조조정의 예정 등 경영상 이유가 있는 경우 근로자의 청구를 거절할 수 있다. 근로자의 요구권을 확정적 권리로 보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절차적 사항에 중점을 두어 규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사용자의 거절이 불공정하다 판단되는 경우 근로자는 노동위원회에 심사청구를 제기하여 권리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영국은 상대적으로 유연한 노동관계, 사회보험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플랫폼노동 등 새로이 출현하는 일하는 방식에 대해 기존의 법제도를 이용해서도 상당부분 수용이 가능한 상황이다. 우리의 경우 영국과는 노동, 사회보험 체계가 상당부분 달라, 현실적으로 0시간 계약과 같은 새로운 형태를 기존 제도 내로 포섭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일하는 방식이 화두고 되고 있는 지금, 국내에서의 앞으로 논의에 있어 영국의 체계는 의미있는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