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연기금의 기금운용 원칙과 특징

수익성 및 안정성 추구

자산규모 면에서 세계 주요 연기금으로 손꼽히는 일본 GPIF, 노르웨이 GPFG, 캐나다 CPP(이상 전국민 대상 국가연금)와 네덜란드 ABP, 미국 CalPERS(이상 공무원‧교원 대상 직역연금) 등은 모두 ‘가입자의 노후생활 보장’이라는 본연의 목적 달성을 위해 기금운용의 수익성을 가장 중시한다.

이들 세계 주요 연기금은 베이비붐 세대 은퇴와 고령화에 따른 수급자 증가로 재정고갈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수익률 제고를 통한 기금자산 증식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안정적 수익률 제고를 위해 기업과의 우호적 관계를 기본으로 기금운용과 그에 따른 주주 활동을 추진한다.

마땅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음에도 주주권 행사 강화에 집중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세계 주요 연기금은 경영권과 주주권의 균형을 중시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자본시장 풍토 위에서 주주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독립성과 전문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의사결정 거버넌스 구축

공적연기금이 수익성과 안정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기금운용 의사결정체계에 독립성과 전문성이 필수적인 바, 세계 주요 연기금도 이를 위해 지속적인 거버넌스 혁신을 추구하고 있다.

특히 일본 GPIF, 노르웨이 GPFG, 네덜란드 ABP, 캐나다 CPP 등은 모두 민간 투자·금융 전문가 중심의 기금운용 거버넌스를 구축해 장기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재정고갈에 대한 국민적 우려에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세계 자본시장과 금융산업을 주도하는 트렌드로 책임투자원칙(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 PRI)이 확산되고 있으나, 세계 주요 연기금의 경우 책임투자 결정에 대해 이해관계자 갈등이 크지 않은 것은 의사결정 거버넌스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연금도 2019년 7월 자산규모 700조원 돌파, 국내 주식시장 점유율 7%를 넘어서는 등 자본시장과 상장기업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사회책임투자 관련 연기금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논란이 가열, 경영진·주주와의 갈등도 커지는 상황이다.

다만, 세계 주요 연기금은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거버넌스를 구축해 의사결정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높기 때문에 이해관계자 간 이익 충돌이 있는 투자 결정을 하더라도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 주요 연기금의 최고정책결정기구

우리나라 국민연금을 제외한 세계 주요 연기금(특히 국가연금)은 모두 민간 투자·금융 전문가 중심으로 거버넌스를 구성하고, 정부의 개입 여지를 사전 차단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의사결정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일본 GPIF

일본의 최고정책결정기구 GPIF는 2006년 출범 당시부터 관계법령에 따라 ‘운영위원회’를 설치, 이후 2017년 10월 ‘경영위원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최고정책결정기구로서의 역할을 강화했다. 경영위원회는 9명의 경영위원과 GPIF 이사장 등 총 10명이 참여하며 경영위원회 위원(위원장 포함)은 경제, 금융, 자산운용, 경영관리 분야 외부 민간 전문가 중 공모를 통해 후생노동성 장관이 임명한다.

이들 9명의 경영위원 중 가입자 이익을 대표하는 1인과 사업주 이익을 대표하는 1인 등 2명은 노사단체 추천을 받는 방식으로 대표성을 보완한다.

노르웨이 GPFG

노르웨이은행 이사회(Executive Board)는 리스크관리, 책임투자 등 원칙과 기금운용‧관리에 관한 지침을 결정해 투자운용국(NBIM)에 부여하고, 운용성과에 대한 보상체계를 결정한다. 이사회는 총재 1인, 부총재 2인 외 외부 민간 투자·금융 전문가 7인 등 총 10명으로 구성된다.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이사회 구성원은 모두 의회에서 여·야 합의로 추천해 국왕이 임명한다.

이사회 하부에 감사위원회, 보상위원회, 의결권위원회, 위험투자위원회 등 4개 전문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네덜란드 ABP

ABP는 수탁자위원회(Board of Trustees)가 기금운용에 관한 정책 결정과 APG의 기금운용 업무에 대한 관리‧감독을 수행한다.

수탁자위원회는 사용자단체가 추천한 전문가 4인, 근로자단체가 추천한 전문가 5인과 연금수급자 대표 3인(2014년 7월 연금지배구조법 개정으로 연금수급자 대표 3인 참여), 그리고 투표권 없는 독립 의장(independent chairman) 1인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다.

실제로 의장을 포함한 각 위원들은 노사단체가 추천만 할 뿐, 모두 오랜 경력의 투자·금융 분야 전문가 출신이다. 2019년 12월 현재 Corien Wortmann-Kool 메르세데스 벤츠 이사가 의장으로 활동 중이며, 집행이사회 5인과 감독이사회 7인 모두 민간 투자·금융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캐나다 CPP

CPPIB에서는 이사회가 투자정책 등 기금운용에 관해 주요 사항을 결정하고, 기금운용 업무에 대한 관리‧감독을 수행한다. 이사회 하부에 투자위원회, 감사위원회, 인적자원·보상위원회, 지배구조위원회 등 4개 전문위원회 운영한다. 이사회가 주요 정책을 결정하면, 그에 따라 CPPIB 내 기금운용집행기구가 기금운용 사업을 수행하는 구조다.

CPPIB 이사회는 금융기관 최고경영자 5명, 일반기업 최고경영자 5명, 학계 전문가 1명, 변호사 1명 등 총 12명의 민간 투자·금융 전문가로 구성된다. 공모를 통해 후보자 풀을 구성한 후 연방정부 및 주정부 추천 인사로 구성된 인사추천위원회의 제청을 거쳐 연방 재무장관이 임명한다.

미국 CalPERS

CalPERS는 이사회가 자산 배분 등 기금운용에 관한 주요 정책 결정과 사무 감독 역할을 수행한다.

CalPERS 이사회는 선거를 통해 당선된 은퇴자 대표 6인, 주지사가 임명하는 2인, 주 하원의장과 상원 운영위원회가 공동 선임한 공익대표 1인, 법률에 따른 당연직 이사 4인(캘리포니아주 재무장관, 감사관, 인사행정국장, 인사위원회 대표) 등 총 13명으로 구성된다.

의장과 부의장은 1년마다 13명의 이사들이 매년 1월 이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선출함으로써 의사진행의 실질적 중립성을 담보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의 문제점

현행 국민연금 기금운용체계는 복지부가 주관하는 기금운용위원회가 기금운용에 관한 주요 정책을 결정하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기금운용에 관한 사업을 집행하고 있다.
기금운용에 관한 최고정책결정기구는 정부 부처에서 직접 운영하고, 기금운용 집행기구는 국민연금공단 내 독립조직으로 운영하는 방식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이한 구조다.

정치적 독립성 취약

국민연금 관리·운용 주체가 정부와 산하 공공기관이다 보니, 정부 정책이 개입되거나 노동계 또는 시민단체 입김으로 기금운용 기조가 흔들림에 따라 연기금의 경영중립적 투자운용 저해 및 시장 불확실성이 가중된다.

실제로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연금이 강제가입을 전제로 한 국민 노후자금이라는 생각보다는 국가의 재정기금으로 인식해 정책 수단에 활용하는 시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저소득 무주택자를 위한 임대주택사업, 저출산 문제 해소를 위한 보육시설 설치 사업 등 공공복지 투자를 추진한다.

특히 기금운용에 관한 최고정책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의 40%가 정부 관계자인 상황에서, 기금운용위원회의 의사결정이 투자‧금융 관점에서 독립적‧배타적으로 의결되기는 어려운 구조이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 20명 중 위원장인 복지부 장관을 비롯해 당연직 정부위원 5인, 관계 전문가 자격으로 국책연구기관장 2인 등 총 8명이 정부를 대표하거나 정부와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있다.

또한 지역가입자 대표 중 일부는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로 채워짐으로써 의사결정 과정에서 정부와 시민단체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기금운용에 관한 전문성 부족

기금운용위원회가 심의·의결해야 할 사항은 기금운용지침, 자산운용 관련 정책, 성과평가 등 대단히 전문적인 사안이나, 현행 기금위는 정부와 가입자 등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의사결정의 독립성과 함께 전문성 높은 의사결정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정부부처와 국책연구기관도 엄밀히 기금운용 전문가가 아니며, 직장가입자 대표 6인(사용자 대표 3인, 근로자 대표 3인)과 지역가입자 대표 6인 등 민간 위원 12인도 각계 가입자를 대표하는 상징성만 있을 뿐, 투자‧금융 등 기금운용에 관한 지식과 경험은 대단히 부족한 실정이다.

노동계는 기금운용위원회 하부에 전문위원회를 두고 있다는 이유로 이해관계자 중심의 현행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을 옹호하는 입장이나, 전문위원회 의견이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비중 있게 반영되지 못하는 게 현실인 바, 최종적 의사결정 단계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성 부족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불합리한 위원 구성과 대표성 논란

‘재정기여도’ 측면에서 볼 때 현행 기금운용위원회의 대표성 문제 발생

정부는 국민연금공단 운영비 일부 지원(매년 100억원)과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크레딧 지원 외에는 순수 연기금에 대한 재정기여도가 없음에도 불구, 기금운용위원회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가입자를 대표하는 민간 위원의 경우 직장가입자와 지역가입자의 재정기여도가 약 9:1임에도 불구하고 위원을 6명씩 동수로 위촉함으로써 가입자 전체의 의사가 왜곡 반영될 개연성이 있다.

2018년 기준으로, 국민연금 보험료 수입 중 직장가입자는 86.3%(사용자 43.15%, 근로자 43.15%)를, 지역가입자는 9.1%를 부담했다.

일부 지역가입자 대표의 경우 특정 정치 성향의 시민단체에 위원 추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해당 위원이 지역가입자의 이해관계를 중립적으로 대변하지 못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 거버넌스 개편 제언

기금운용위원회 개편

전문가 중심으로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정부와 가입자 등 이해관계자 참여는 국민연금공단 비상임이사 자격으로 공단의 사무를 감시·감독하는 역할에 국한하고, 새로운 기금운용위원회는 전원 민간 투자·금융 전문가로 개편해야 한다.

이해관계자 중심의 현행 기금운용위원회는 독립성과 전문성이 매우 부족하며, 그 결과 객관적 근거에 입각한 투자 판단보다는 여론에 따른 정치적 판단이나 타협의 개연성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위원장인 복지부 장관이 아무리 의사진행을 중립적으로 하더라도 안건 선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에 있어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존재한다.

위원회의 효율적 운영과 개별 위원의 책임 있는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현재 20명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을 12명으로 대폭 축소해야 한다.

세계 주요 연기금의 최고정책결정기구는 10~13명의 위원으로 구성(일본 GPIF 경영위원회 10명, 노르웨이 GPFG 10명, 네덜란드 ABP 13명, 캐나다 CPP 12명, 미국 CalPERS 13명 등)되는 반면, 우리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이보다 훨씬 많은 2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효율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실정이다.

위원 자격요건 및 검증 절차를 강화해야 한다. 위원 자격요건을 포괄적 학문분야(법률·경제·경영·금융)나 직업군(변호사·회계사)으로 정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기금운용과 관련된 구체적인 경험과 전문적 식견을 자격요건으로 하되, 각 분야 최소 경력연수를 10년 이상으로 상향 조정(현재 정부가 신설하려는 상근전문위원의 경우 최소 경력연수로 5년을 규정할 것으로 예상되는 점을 고려)이 필요하다.

기금위의 상설 또는 정례 회의체 전환, 의사결정의 연속성·효율성을 위해 기금위 위원의 전문위원회 활동 겸임 원칙도 확립할 필요가 있다.

기금운용체계 개선

최고정책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를 집행기구인 기금운용본부와 함께 공단 내 독립된 조직으로 일원화하되, 복지부 장관이나 공단 이사장이 의사결정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법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또 기금위는 기금운용과 주주권 행사 등에 관한 원칙을 제시하고, 실제 위탁사 운용분에 한해서는 의결권 행사 등을 전면 일임함으로써 기금운용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총자산의 23.5%인 37.8조엔(2019년 3월 말 기준)을 자국 내 주식에 투자하는 일본 GPIF의 경우도 ESG 투자를 강화하는 추세지만, 기금운용과 의결권 행사를 위탁사에 전면 일임하기 때문에 자국 내 사회적 논란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