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선정 동국대학교 법대 석좌교수]

필자는 오래 전에 “붉은 깃발법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다(경상일보 2007.2.21.자). 오늘의 주제와 결이 다소 다르지만, ‘붉은 깃발법’은 잘못된 규제법률 때문에 한 나라의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잃게 된 대표적인 입법참사이다.

오늘날 한국에는 고민이 부족한 내용의 입법이 매우 거칠기 짝이 없는 과정을 통하여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국회를 통과한 개정상법으로 그 범위를 좁혀 생각해 본다.

첫째, 이 법이 왜 ‘공정경제’에 관한 법으로 묶였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미국 연방대법원도 빈번히 인용하는 블랙법률사전 제9판 674쪽은 ‘공정’을 ‘치우침 없는’, ‘편견 없는’, ‘편향적이지 않은’ 것으로 설명한다. 주주권의 남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주주권행사를 제한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지배주주나 소수주주 모두에게 남용의 우려를 없애는 수준에서 제한될 수 있을 뿐이다. 적대적 세력이나 투기자본의 남용가능성은 외면한다면 공정은 허언이 될 것이다.

외국계 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된 경험적 사실에 더하여 새삼 주주권의 ‘본질’도 생각하여야 한다. 정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지배구조개선이 갑을문제 해소, 상생협력 강화, 소비자 권익보호와 함께 공정경제 정책의 근간이라고 한다. 지배구조는 위 문제들과 동일 범주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둘째, 우리 입법자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글로벌 스탠다드를 든다. 궁할 때는 남미의 어떤 나라를 예로 들기도 한다.

그러나 개정상법의 일부내용은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제도의 원형이라고 할 미국 회사법상 감사위원회는 이사회 내 위원회일 뿐이다. 일본도 감사·감사 등 위원·감사위원 모두 주총 보통결의로 선임된다. 이들 나라들도 기업의 불상사가 있지만 우리 식의 해결은 하지 않는다.

전대미문의 입법례라는 점은 결국 한국이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임을 말한다. 더군다나 3%라는 기준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출처조차 불분명한 1963년 상법 제409조의 ‘100분의 3’이 주주권행사를 제한하는 객관적 기준인지에 대하여는 입법부도 정부도 검증하지 않았다. 지난 60여년간 사문화되었던 제409조의 ‘3%’가 관성처럼 따라 붙어 대한민국의 그럴듯한 기업은 모두 공격대상이 될 뿐이다.

셋째, 개정론자들이 말하는 개정의 필요성은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혹자는 국제자본시장에서 코리아디스카운트와 한국기업에 대한 낮은 신뢰를 지적하기도 한다. 낮은 신뢰의 징조는 어디서 알 수 있는가? 낮은 신뢰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감사위원분리선임을 안하고 3%룰이 없기 때문이라는 증빙은 제시된 바 없다.

정부의 어떤 인사는 분리 선임되는 감사위원이 1인이므로 다수결 원칙상 그 영향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기업에 조금 귀찮은 일은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역동적인 기업활동에서 다수결이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대규모상장법인에서도 감사위원이 3명인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이사회 내 위원회의 위원장도 맡아야 한다. 2016년 법무부 상법개정안처럼 근로자나 소액주주들의 사외이사 선출권이 현실화될 경우 감사위원회와 이사회는 극단적 갈등의 장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관계자의 위 주장은 감사위원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역설적으로 법을 강행할 이유가 없음을 뜻한다.

넷째, 법에서 중요한 것은 수규범자에게 법충성을 요구할 수 있는 법적 안정성이다. 여기에는 법을 지킬 준비기간도 포함된다.

21대 국회 반년동안 기업을 옥죄는 법률들이 하루 1건 이상씩 나왔다. 국회의안은 그 시행에 수반될 것으로 예상되는 비용에 관한 국회예산정책처의 추계라도 가능하다. 그러나 법제정에 따라 기업이 떠안는 비용에 대하여 국회는 별반 관심이 없다. 기업이나 사업자단체가 추계하여 제시하는 바는 간과되기 일쑤이다.

다섯째, 이른바 공정경제 3법의 입법과정을 목도하면서 대의정치에 대한 신뢰감에 회의가 든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회법이 정한 절차를 준수하여 형식상 법을 위반한 바 없다고 할지라도 심도 있는 토론과 진지한 의견수렴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법안의 내용이 막바지까지 유동적이었던 점도 입법내용에 대한 깊은 고민 때문이 아니라 특정 정당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전략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법의 정신’은 벗어난 것이다.

하이예크는 “’다수가 선택한 것은 정의’라는 말은 사리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했다. 제1야당의 태도도 아쉽다. 다른 법이 더 중요해서, 의원 숫자상 역부족이어서, 2013. 7. 법무부 상법개정안과 2016. 7. 4.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 대표발의 했던 상법개정안과 흡사한 내용이어서인지 당론도 알기 어려웠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입법참사를 최소화할 방법을 생각해 본다.

첫째, 새로운 법에 대응할 시간이라도 주어야 한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리 만무하니 국회가 부칙개정에 나서야 한다. 대부분 부칙에는 주지기간을 둔다. 이해관계자나 일반국민이 법의 내용을 알고 이를 준수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우리 상법은 ‘공포 후 4년의 범위 내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날’, 공포 후 3년, 2년, 1년 또는 (조항에 따라) 3년을 규정한 때도 있다. 6월과 1년도 각각 5차례였다. 공포한 날 즉시 시행된 것은 4회에 불과했고 대개 타법령 개정에 따른 기계적 개정인 경우였다.

개정법률의 내용이 막판까지 유동적이었던 점과 당장 1~2개월 후면 많은 기업들이 주총서 임원선임을 해야 한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둘째, 투기자본과 부도덕한 적대세력으로부터 기업을 방위할 수 있도록 ‘지주기간’ 등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셋째, 상법 시행령 제38조 등을 통하여 해당조항의 적용범위를 주주권의 본질에 맞게 줄여야 한다.

넷째, 기업에 쓰나미처럼 몰아치는 규제관련 법안들에 대한 완급이 조절되어야 하며, 정부와 국회는 기업에 주문만 하지 말고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기업활성화 법안의 제·개정으로 입법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