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다국적기업의 규모 및 영향력 확대와 함께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발생하는 기업의 인권경영 이슈도 확대되고 있다.

이에 UN, OECD, ILO 등의 국제기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기업책임경영(RBC)에 대한 국제 이니셔티브를 마련했으며, 다국적기업들 또한 이를 토대로 자발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국제 이니셔티브가 법적 구속력이 없는 연성법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최근 주요국들은 구속력 있는 국내법과 규제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법률의 제·개정 추세는 해외에 진출했거나 해외진출을 계획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바, 이번 호에서는 주요국들의 기업책임경영 관련 주요국 법제화 동향과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

1) 도드-프랭크 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_and Consumer Protection Act)

도드-프랭크 법은 분쟁광물(분쟁광물은 주석(Tin), 탄탈륨(Tantalum), 텅스텐(Tungsten) 및 금(Gold)을 가리키며, 줄임말로 3TG라고 지칭한다.) 거래로 발생한 수익금이 콩고민주공화국 지역 무장단체 자금으로 쓰이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해당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증진하려는 목적으로 2010년 제정되었다. 미국 의회는 동 법률 제1502조에 따라, 콩고민주공화국과 인접 국가에서 생산된 분쟁광물과 관련한 기업들의 조치와 이에 대한 공개를 요구했다.

도드-프랭크 법에 따라 기업들은 제품의 기능 또는 생산에 필요한 분쟁광물이 콩고민주공화국 또는 인접한 9개국에서 생산되었는지 아닌지를 매년 증권거래위원회(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에 보고해야 한다.

분쟁광물 생산지가 이들 국가인 경우, 상장기업들은 보고서를 작성해 해당 광물의 공급망 실사 관리조치를 공개해야 한다. 보고서는 독립적 감사인의 감사를 포함해야 하며, 증권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 역시 기업 홈페이지에 공개해야 한다. 증권거래위원회는 2017년 실사의무 또는 분쟁광물 보고서 요구를 사실상 중단하였으나, 분쟁광물과 관련된 기업들은 여전히 공개에 참여하고 있다.

동 법률은 ①기업의 직접적 인권침해가 아니라 공급망에서 발생한 인권침해를 다루고 있고, ②인권침해에 대한 자율적 규제가 아니라 법적 규제를 포함하고 있으며, ③인권침해 행위 자체를 규제하지 않고 이와 관련한 정보공개를 요구하며, ④실사 이행을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그 과정과 결과 공개를 요구하고, ⑤인권법이나 기타 특별법이 아니라 기존 증권법상의 공개제도를 이용했다는 특징이 있다.(이상수(2018), “기업의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 규제”,「법과기업연구」제8권 제3호,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 p.122)

2) 미국 연방조달규정(Federal Acquisition Regulation; FAR)

미국 연방조달규정은 정부조달 계약자들에게 인신매매 근절을 강조하면서 공급망 활동에 대한 실사의무를 부과한다. 연방조달규정에 따르면 계약자들은 법으로 금지된 사항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조치를 취했음을 증명해야 한다.

해당 규정은 계약자가 공급망 내에 있는 협력사의 작위 및 부작위에 책임을 지게 되는 전달조항(Flow-down provisions)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방정부에 공급을 하려는 계약자는 자신의 공급망, 즉 협력사 등이 인신매매 관련 행위에 관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조사 및 조치를 취해야 한다.

3) 캘리포니아 주의 공급망 투명성법 (California Transparency in Supply Chains Act)

공급망 투명성법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에서 연매출 1억 달러 이상인 모든 소매상과 제조업체는 공급망 내 강제근로와 인신매매를 근절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공개해야 한다.

공개해야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인신매매와 노예 방지를 위해 공급망을 점검한 사실, ②협력사들이 인신매매와 노예에 관한 사회적 기준을 준수했는지 점검한 사실, ③협력사들이 활동하는 국가의 인신매매 및 노예 관련 법을 준수했는지 확인을 요청한 사실, ④노예와 인신매매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협력사 책임 추궁시 관련 내부 절차와 기준을 유지한 사실, ⑤노예 및 인신매매 관련 내부 교육을 진행한 사실 등이다.

이 법률은 인권실사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강제근로와 인신매매라는 제한된 영역에서 위험성을 사전에 식별하고, 예방조치와 정보공개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인권실사를 강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보공개는 해당 기업 홈페이지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홈페이지가 없는 경우 소비자는 기업에게 서면으로 정보를 요청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해당 기업은 30일 이내에 서면으로 관련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4) 외국인불법행위법(Alien Tort Statute; ATS)

외국인불법행위법은 미국 국적자가 아닌 외국인이 “국제법 위반(Violations of the laws of nations)”에 근거하여 미국 연방법원에 소를 제기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 법률은 1789년에 제정된 법으로서, “[연방]지방법원은 국제법(Law of nations) 또는 미국의 조약 위반에 대해 외국인이 제기하는 민사 불법행위 소송의 관할권을 갖는다.”는 단 1개의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법률과 관련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미국 에너지기업 Unocal 판결이다. Unocal이 미얀마에서 태국까지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미얀마 군인에 의한 현지주민 살인·고문·강간·강제근로 등 인권침해가 발생하자 미국법원은 Unocal에게 일부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영국

1) 현대 노예방지법(Modern Slavery Act)

영국은 2015년 현대 노예방지법을 제정했다. 동 법에 따라 기업들은 기업활동 또는 공급망 내 인신매매와 같은 문제를 예방·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담은 연례보고서를 발간해야 하며, 홈페이지가 있는 경우 노예방지 성명을 게시해야 한다.

동 법률은 영국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자로서 전 세계 매출액이 3,600만 파운드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2) 뇌물법(The Bribery Act)

2011년 영국 법무부는 2010년에 제정된 뇌물법 제9조에 근거, 기업이 뇌물방지 절차 이행시 고려해야 할 6가지 원칙을 담은 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실사의무와 유사한 접근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영국의 뇌물방지 및 반부패 프로그램의 기반으로 쓰였다.

프랑스

1) 모기업과 위탁기업의 경계의무에 관한 법률(Law on the Duty of Vigilance of Parent Companies and Commissioning Enterprises)

2017년 3월 프랑스는 기업활동이 인권과 환경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다루기 위해 모기업과 위탁기업의 경계의무에 관한 법률을 공포했다. 이 법률은 기업에 경계 계획을 수립할 의무를 지우지만 그 방식은 기업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이 법률은 △프랑스 내에서 5,000명 이상을 직·간접적으로 고용하고 주사무소가 프랑스 내에 있는 기업과 △프랑스에서 10,000명 이상을 직·간접적으로 고용하고 주사무소가 외국에 있는 기업에게 적용된다.

대상 기업들은 실사의무 조치를 포함한 경계 계획(Plan de vigilance)을 수립·공개·이행해야 한다. 특히, △의무의 대상이 되는 기업, △대상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업, △해외 활동을 포함, 실사의무 대상 기업과 일정한 사업관계를 유지하는 협력사 또는 공급자의 활동을 다루는 경계 계획이 요구된다.

경계 계획에는 기업활동으로 인해 발생 가능한 위험성 예방조치, 기존 위험성 완화조치, 위험성 경고 메커니즘 및 효율성 평가를 포함해야 한다. 기업은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연례 경영보고서를 발간해 경계 계획 및 시행 결과를 대중에 공개해야 한다.

개인 또는 단체는 의무대상 기업에 실사의무 준수를 요구할 수 있다. 만일 3개월 이후에도 회사의 대응이 불충분하다고 간주되는 경우, 법원에 이행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법원은 벌금, 손해배상책임 부담 판결 등을 내릴 수 있다.

EU 지침 및 규정

1) EU 비재무보고 지침(EU Directive on Non-Financial Reporting)

2014년 채택된 EU 비재무보고 지침은 EU 내 기업들을 대상으로 재무제표 외에 비재무제표를 통해 기업활동의 사회적·환경적 영향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지침은 근로자 500명 이상의 기업에 적용된다. 여기에는 상장기업, 은행, 보험회사 등 EU 전역의 대기업과 국가가 공익 법인(Public-interest entities)으로 지정한 단체들이 포함된다.

대상 기업들은 비재무재표를 통해 환경보호, 사회적 책임과 근로자 처우, 인권 존중, 반부패와 뇌물, 이사진의 다양성과 관련된 정책을 공개해야 한다. 또한, 기존·잠재적 부정적 영향을 식별, 방지 및 완화하기 위한 공급망 실사의무 절차에 관한 정보도 공개해야 한다.

이 지침은 기업이 채택한 방식으로 관련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기업들은 UNGP,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ISO 26000과 같은 국제 이니셔티브를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이행하거나 설명하기’(Comply or explain) 모델을 채택하고 있어 기업들이 해당 지침을 준수하지 않는 경우 그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2) 지속가능한 투자 및 지속가능성 위험 관련 고지 요건에 관한 신제안 EU 규정(Regulation on disclosures relating to sustainable investments and sustainability risks and amending Directive)

2019년 EU는 금융상품 공급자와 최종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 자문가(Financial advisors)에 의한 정보공개 강화 및 개선을 골자로 한 규정을 채택했다.

해당 규정은 금융시장 참여와 금융 자문가가 고객의 이익을 위해 준수해야 하는 의무의 일환으로 환경, 사회 및 지배구조(ESG) 정책을 내재화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이러한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ESG 정책과 함께 준수사항을 투자자에게 알릴 수 있도록 통일된 보고형식을 제시하고 있다. 보고서를 통해 수질오염, 생물 다양성 감소 등 ESG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공개해야 한다.

3) 분쟁광물에 관한 EU 규정(Conflict Minerals Regulation)

2017년 EU는 분쟁지역 또는 고위험 지역에서 채굴되는 주석, 탄탈륨, 텅스텐, 광석, 금을 수입하는 EU 국가에 대한 공급망 실사 의무를 확립하였다. 2021년부터 시행될 동 규정은 무장단체와 보안군이 분쟁광물을 거래할 가능성을 축소하고 조합 수입자(Union importers), 분쟁지역 또는 고위험 지역에서 영업하는 제련소 및 정유사의 공급 관행 투명성을 제고하려는 목적이 있다.

독일

2019년 독일 정부는 2020년까지 500인 이상 독일 기업의 50%가 인권실사 절차를 도입하지 않으면 입법을 통해 인권실사 절차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한, 독일 기업과 공급망 내 인권 실사의무 관련 법률 초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독일 정부는 환경보호 등 글로벌 공정경쟁 환경을 위해 자국내 공급망 실사의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부 등 관련 부처는 의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독일 기업들은 공급망 실사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 입장이다. 이미 네슬레 등 일부 식품업체 및 슈퍼마켓 체인은 해당 법안에 찬성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공급망 전체 관리가 어려운 중소기업에 과도한 부담과 독일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또한 제기되고 있다.

시사점

그간 UN, ILO, OECD 등 국제기구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기업의 자율적 참여를 기반으로 CSR 및 RBC를 독려해왔다. 그러나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다국적기업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책임과 의무도 강화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며 주요국은 관련 법제화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RBC와 관련한 국제 규범을 기업 정책에 반영하지 않을 경우 기업 신뢰도와 경쟁력 훼손 위험이 있으며, 나아가 경영활동에 실질적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 이에, 해외에 진출한 기업들은 진출국 법제 변화를 파악해 준수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속가능한 경영전략의 일환으로 RBC를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 : 국제협력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