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연말연시를 뜨겁게 달구었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우여곡절 끝에 제정되었다. 경영책임자, 기업 등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법, 그것도 쟁점이 매우 많았던 제정법을 일정을 못 박아 놓고 번갯불에 콩 볶듯 졸속 심의를 했다. 엉성한 법이 탄생하는 것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중대재해가 많은 가장 큰 이유가 처벌이 낮기 때문이라는 생각부터가 사실관계와 달랐다. 중대재해법 제정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법정형은 재해예방선진국과 비교할 때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중대재해가 많은 본질적인 이유는 외면한 채 처벌만 강화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듯이 주장했다.

우리나라에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마치 없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 대목에서는 법 제정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기존법의 벌칙체계를 정교하고 효과적으로 개선하려는 조치와 예방행정시스템을 혁신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이러한 조치와 노력의 해태를 가리려는 수단으로 중대재해법을 들고 나왔다.

잘못된 인식과 진정성이 결여된 의도로 출발한 입법이 올바른 내용을 담고 있을 리 없다. 법사위 심의과정에서 문제점이 다소 수정되긴 했지만, 발의안에 워낙 문제가 많았던 터라 법리, 안전원리 및 실효성의 면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문맥이 맞지 않거나 상호 모순되는 용어, 표현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집행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맡기는 법, 도저히 지킬 수 없는 사항을 규정해 놓고 이를 위반할 경우 처벌하겠다고 하는 법을 우리는 악법이라고 부른다. 중대재해법은 이 악법 기준에 딱 들어맞는다. 악법의 문제는 수범자에게 언제든지 처벌될 수 있다고 잔뜩 겁을 주지만 실질적 효과는 거두지 못한다는 것이다.

독일의 법학자 벨첼(Welzel)은 “법치주의는 불명확한 형벌규정을 통해 무너진다”고 역설하였다. 지나친 형벌을 규정하는 법도 문제이지만 이보다 무서운 것이 이현령비현령식의 해석이 될 수 있는 불명확한 법이다. 중대재해법은 이 자의적 법집행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법집행기관에게는 참으로 편리한 법이 만들어진 셈이다.

특히 경영책임자에게 애매하고 모호한 안전확보의무를 부과하면서, 그것도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경영책임자가 조치해야 하는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태이다. 이런 식의 규정으론 경영책임자를 공포에 떨게 하면서 ‘군기’는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 중대재해를 줄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강도, 절도, 폭행과 같은 자연범과 달리 행정범에 대해선 명확하게 규정해야 수범자에게 재해예방을 위한 행동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형벌이 강할수록 명확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은 준법의지가 있는 경영책임자, 나아가 전문가라도 안전조치를 어떻게 이행해야 할지 행위유형의 실질을 파악할 수 없는 규정이 수두룩하다.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에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강제하고 있는 부분도 적지 않다. 안전조치의무라는 건 전 계층에 의해 이행될 수 있는 것임에도, 경영책임자가 이를 직접 다 이행하라는 식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안전원리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잉금지의 원칙에도 반한다.

불법의 정도, 비난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산업안전보건법보다 강하게 처벌할 규범적 근거가 없는데도 산업안전보건법보다 훨씬 강한 형벌을 규정하고 있는 건 형벌체계의 정당성과 균형을 상실한 것으로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

도급, 용역, 위탁과 관련해서는, ‘위험의 외주화’라는 프레임에 갇혀 원청에게 하청 종사자에 대해 형사책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위험책임, 연대책임, 대위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자기책임의 원칙에 위배된다. 최상위 원청에게만 하청 종사자 보호를 위해 작업행동에 대한 조치를 포함하여 모든 차원의 조치를 직접 하도록 하는 식의 불합리하고 거친 규제로는 하청문제를 풀 수 없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거나 진배없다.

이처럼 중대재해법에 위헌소지가 많고 안전원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것은 이 법이 실효성보다는 보여주기에 급급한 또 하나의 무책임한 포퓰리즘 입법임을 보여주는 증좌이다. 수범자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처벌만이 강조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접근으로는 중대재해를 줄이기는커녕 사회적 비용과 혼란만 증가시킬 뿐이다.

시스템 개선 없는 생색내기 입법이 중대재해 감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수치가 최근 발표됐다. 코로나로 취업자수가 외환위기 이후로 가장 많이 감소한 상황 속에서 지난 해 산재사망자수가 27명이 증가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었다. 처벌을 대폭 강화한 ‘김용균법’ 시행 후의 성적이어서 처벌강화가 중대재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막무가내로 김용균법을 밀어붙였던 정치권 등은 이 수치 앞에서 뭐라고 할 것인가. 그때도 그 법이 통과되면 원하청문제 등이 해결될 듯이 강변하지 않았는가.

중대재해법 제정을 빌미로 산재예방시스템은 개선하지 않고 산재예방행정인력을 또 늘리는 꼼수를 부릴 수도 있는 점도 우려되는 지점이다. 그간에도 현 정부는 행정인력을 늘리는 손쉬운 방법에만 의존해온 터라 이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근로자수를 감안할 때 선진국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행정인력이 부족하지 않다. 미국보다 6배 이상 많고 일본보다도 4배 이상 많은 상태다. 이 상태에서 시스템 개선 없이 인력증원이라는 헛물을 켠다면 성과 없이 행정비용만 잔뜩 늘렸다는 역사적 평가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하위법령으로 위임한 사항도 매우 적은 상태이다. 그래서 하위법령에서 상세히 규정하는 것만으로는 위헌소지, 실효성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많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는 문제가 차고 넘치는 데다가 태생적이고 근본적이다. 하위법령 제정이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명분으로 내건 입법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법을 전면 개정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국회가 자율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으면, 위헌소송이라는 타율적 방법에 의해 문제해결이 도모될 것 같다.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