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주요 대기업들은 해외에서 다국적기업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이며, 중견기업 및 중소기업도 동남아, 중남미 등지에 진출해 글로벌 공급망을 통해 생산과 판매 등 기업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제기될 수 있는 기업활동과 관련된 분쟁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인식이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18년 프랑스 시민단체가 삼성전자를 기업윤리 미준수 및 허위홍보를 이유로 고발해 프랑스 사법당국의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글로벌 공급망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에게 기업책임경영 관련 분쟁은 언제든 발생 가능한 현실적 문제임을 알 수 있다. 이번 호에서는 다국적기업의 기업책임경영 관련 국제 분쟁사례들과 시사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국

1)Doe v. Wal-Mart 사례

(개요) 본 사례의 원고들은 월마트(Wal-Mart)에 물품을 공급하는 방글라데시, 중국, 인도네시아, 스와질랜드 및 니카라과 등 각국에 있는 공급업체 근로자들이었다. 이들은 월마트가 각국의 공급업체와 체결한 계약 내용 중에 ‘공급업체들이 노동 및 산업 표준들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행동강령’과 ‘월마트가 행동강령의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하기 위해 현장조사와 같은 조치를 이행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던 점을 들어 월마트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다. 원고들은 월마트가 원고들의 공동 사용자이며, 공급업체 근로자들의 근로환경을 관리하여 원고들을 보호하고 모니터링을 해야 했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으며, 월마트가 원고들에 대한 인권침해로 부당하게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결과) 법원은 월마트가 공급자들의 근로자들에 대한 간주책임(Assumed responsibility) 을 지는 지에 대해 검토하고, “설령 월마트가 점검할 수 있는 권한을 유보했다 하더라도, 점검할 의무(Duty to inspect)까지 부담하는 것은 아니고, 나아가 월마트의 공급계약이 공급자들의 근로자들에 대한 보호까지 의도하고 있지는 않다”고 판시하며 월마트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2) Kiobel v. Royal Dutch Petroleum Co. 사례

(개요) 나이지리아 국적자 Kiobel은 1990년대 네덜란드, 영국, 나이지리아 정유회사들이 사업을 위해 나이지리아 정부의 불법 시위진압 행위들을 교사, 방조하였으므로 피고의 손해배상책임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결과) 미국 연방대법원은 외국인불법행위법(Alien Tort Statute; ATS)의 적용범위가 지역적으로 제한된다고 판시하였다. 구체적으로 연방대법원은 “관련된 모든 행위가 미국 영토 밖에서 발생한 경우”에는 ATS가 외국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까지 확대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외국기업 상대 소송이더라도 미국의 영토와의 충분한 접촉 및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는 여전히 ATS가 적용된다고 하여 적용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3) Doe I v. Unocal Corp. 사례

(개요) 유노칼(Unocal)은 프랑스의 토탈, 미얀마 국영 석유회사와 함께 미얀마에서 천연가스를 축출하여 이를 수출하는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고 있었다. 유노칼은 미얀마 군사정권에 공사지역에서의 안전보장을 요청하였고, 군사정권은 반정부세력으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준다는 명분으로 인근 마을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기반시설과 군사시설 건설을 위한 근로를 강요하는 등 인권침해 행위를 자행하였다. 이에 피해 주민 일부와 미얀마 노조연맹은 NGO의 도움을 받아 미얀마 군사정권과 유노칼 등을 상대로 ATS 위반 소송을 미국법원에 제기하였다.

(결과) 법원은 미얀마 군사정부에 대해서는 외국인 주권면제법에 따른 면책을 인정하면서 관할을 부정하였고, 토탈에 대해서도 인적 관할의 부존재를 이유로 소송을 각하하였다. 그러나 유노칼에 대해서는 본안 적격이 있다고 보면서 유노칼에게 교사, 방조로 인한 일부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였다. 유노칼은 원고들에게 약 12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급하고, 주민들의 권리 보호 및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합의하면서 소송이 종료되었다.

영 국


Lungowe & Others v. Vedanta Resources Plc & Konkola Copper Mines 사례

(개요) 1,826명의 잠비아 국민들이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채굴기업 베단타(Vedanta), △베단타의 잠비아 자회사인 콘콜라 구리광산(Konkola Copper Mines; KCM)을 상대로 영국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원고들은 피고들이 구리광산을 통해 유독물질을 배출, 원고들이 농사를 지을 때 사용하는 땅과 수로에 손해를 입히고 나아가 원고들의 소득에도 손실을 입히고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해쳤다고 주장했다.
KCM과 베단타는 그룹 차원의 정책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각 자회사의 경영진이 이를 준수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으로 주의의무를 다하는 것이며, 자회사의 개별 행위에 대한 주의의무까지는 부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베단타는 첫 심리가 끝날 때까지 잠비아 법원을 관할법원으로 정한 합의가 있었다고 강조하였다.

(결과) 영국법원은 모회사의 책임 유무에 관한 판단은 일반적 불법행위법의 원칙들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즉, 베단타 사례의 원고들이 베단타의 정책 및 감독 수행의 실패가 아니라 베단타의 실제 개입과 관련된 주의의무를 소송의 근거로 삼았다고 보았다.
또한, 영국법원은 잠비아의 관할법원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원고들을 위한 자금조달 메커니즘이 없고 자금력이 풍부한 소송상대방을 상대로 복잡한 소송을 담당할 수 있는 수준의 실체적이고 적합한 경험을 갖춘 법무 인력이 없어 실질적 정의가 실현되지 않을 실제적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해 2019년 4월 베단타 사례에 대한 영국법원의 관할을 인정하였다. 다만, 이러한 판단은 관할에 관한 판단이며, 책임 소재에 관한 본안판단은 심리 중에 있다.

프랑스

Sherpa & Action Aid v. Samsung 사례

(개요) 2018년 셰르파(Sherpa)와 액션에이드(Action Aid)라는 시민단체는 삼성전자 본사와 프랑스법인을 아시아 지역의 강제근로, 아동근로 등 기업윤리 미준수 및 과대 홍보를 이유로 고발하였다. 이에 프랑스법원은 2019년 4월 삼성전자 프랑스법인에 대한 예심(프랑스 형사절차에는 예심이라는 특수한 제도를 두고 있다. 예심이란 공소권 행사를 전제로 하여 범죄 행위자를 특정하고 범죄인의 인격을 해명하여 해당 범죄의 상황과 결과를 확정하는 일련의 절차를 말하며, 이는 우리나라의 검찰이 행하는 범죄수사와 유사하다. 다만, 그 담당기관이 판사라는 점에 특이점이 있다(박재억, 프랑스예심제도 실무, 검찰 국외훈련 연구논문, 2007. 8. 20.).)을 개시했다. 다만, 삼성전자 본사(한국법인)에 대한 예심신청은 기각했다.
위 시민단체들은 삼성전자가 홈페이지에서 스스로 엄격한 글로벌 행동강령을 적용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실제로 베트남, 중국 등 해외공장에서는 아동근로, 장시간 근로, 근로자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가 이뤄졌던 점을 지적하였다.
프랑스에서는 약 20년 전 나이키가 자신의 행동강령을 위반하였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고, 2018년 시멘트 제조업체인 Lafarge가 시리아 반군에 자금을 공급해 현지 근로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였다는 이유로 기소된 바 있다.

독일

(개요) 본 사례는 2015년 3월 “파키스탄 카라치(Karachi) 내 Baldia 섬유공장 화재사건 이후에 독일법원에 제기된 소송이며, 준거법으로는 파키스탄 불법행위법이 적용되었다.
원고들은 독일의 의류 유통업자인 KiK가 파키스탄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주의의무를 가지며, 나아가 공장의 적절한 화재 안전 예방 보장에 실패한 과실책임(Liable in negligence)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의의무의 발생 근거로 KiK가 공장의 유일한 고객이며, 공장 운영에 지속적으로 개입했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KiK는 파키스탄 공급자와의 공급계약서 내에 행동강령을 포함시켰는데, 이는 KiK에게 안전한 작업 환경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이었다.
(결과) 독일 법원은 2016년 8월 본 소송에 대한 관할권을 인정하였고, 원고들에 대한 소송구조(Legal aid)를 허가하였다. 그러나 2019년 1월 법원은 준거법인 파키스탄 법에 따르면 본 소송이 소멸시효(2년)가 지난 후 제기되었고, KiK가 일부 보상처리를 해주었으나 이는 소멸시효 항변을 포기하는 취지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며,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시사점

다국적기업의 경제적 영향력 뿐만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과 진출국의 사회 전반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에 일부 대기업들은 기업책임경영 관련 행동강령 등을 자발적으로 선언하고,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공급망 내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실사 절차를 마련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사례를 보면 다국적기업이 공급망 모니터링을 실시했거나 행동강령을 수립·선포했다는 것만으로는 법적 책임을 완전히 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영국의 Vedanta와 같이 인권경영 지침을 선포한 경우 역으로 잠재적 책임발생의 근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법적 책임과 리스크에 대응하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단순 모니터링이나 행동강령 수립·선포에서 나아가 공급망 내 기업책임경영에 대한 총체적 점검과 그 결과를 반영한 능동적 개선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