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유럽의 사회적대화 발전 과정에서 배운다(4)네덜란드노동조합총연맹(FNV)

네덜란드는 1980년대에 바세나르 협약을 비롯한 다수의 사회협약을 성공적으로 체결하고 이행하여 경제위기와 높은 실업률을 극복한 나라로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나라 중 하나다. 탐방단은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노사단체 중 네덜란드 노동조합총연맹(FNV : Federatio Nederlandee Vakbeweing / 이하 ‘네더란드 노총’)을 방문하여 여러 차례의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에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이유와 대타협의 비결을 듣고자 했다.

네덜란드 노총은 네덜란드의 최상급 노동조합으로서 사회적 대화에서 네덜란드 노동계를 대표하는 조직이다. 네덜란드 노총은 1976년 사회민주주의연맹과 가톨릭연맹이 제휴하여 결성되었으며, 1998년 일반노동조합연맹(AVC), 공공부문근로자연합 등이 FNV와 통합되면서 대표성과 규모가 더욱 확대되었다.

현재 네덜란드에는 네덜란드 노총(FNV) 이외에도 기독교노동조합연맹(CNV : Christelijknational Vakverbond), 사무관리직노동조합연맹(VHP/MHP : Vakcentralevoor Middelbaaren Hoger Personeel) 등의 전국단위 노동조합 조직이 있다. 이들은 동등하게 노동계를 대표하지만 전체 조직근로자의 60% 이상을 점하는 네덜란드 노총이 일반적으로 노동계 대표 조직인 것으로 거론된다. 네덜란드 노총은 전통적으로 사회민주당과 연계되어 있다.

경총 탐방단이 네덜란드 노총을 방문한 것은 2018년 10월 26일 금요일 오후였다. 금요일 오후임에도 Leo Hartveld 네덜란드 노총 이사가 탐방단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탐방단과 Leo Hartveld 이사와의 면담은 위트레흐트(Utrecht) 외곽에 자리잡은 네덜란드 노총 빌딩 1층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긴장감보다는 편안함이 감도는 1층 로비에는 도서와 자료를 비치한 간단한 공개 도서관과 안내데스크, 몇 개의 회의실과 방문자들을 위한 산뜻한 의자들이 놓여있어서 미술관 1층에 들어서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오전에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모처럼 그치고 파란 하늘이 보였던 날이다.

인터뷰는 미리 전달한 사전 질문지의 내용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인터뷰는 오후 4시 30분경부터 한 시간 남짓 계속되었다. 아래에서는 인터뷰 내용을 간략히 정리한다.

네덜란드에서 사회적 대화가 가능했던 배경을 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찾는다면 어떤 것이 있는지?

네덜란드에서 사회적 대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네덜란드의 고유한 역사적 배경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우선 세계 경제대공황(1929~1940)과 제2차 세계대전(1940~1945)기에서부터 시작하겠다. 네덜란드는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인해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했고, 그로 인한 대량 실업과 가난을 겪었다. 이어진 제2차 세계대전은 네덜란드의 거의 모든 경제적 인프라를 파괴했다.

독일군의 대대적인 폭격과 점령 이후의 파괴행위는 매우 가혹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에는 과거 1200년대 무렵부터 이어져온 폴더모델(Polder Model)과 조합주의(corporatism) 전통이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전에 이미 노사 간의 대화가 이어져오고 있었다. 단체협약에 대한 법규정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노사 간의 대화가 더욱 깊이 진전됐다.

나찌 정부는 노동계 인사들과 경영계 측 인사들을 같은 수용소에 수용했다. 그 안에서 노사는 머리를 맞대고 전 후에 네덜란드를 어떻게 재건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중요한 정치세력인 기독민주당은 조합주의, 즉 노사정 등 사회적 당사자가 지속적으로 대화 하는 전통을 중요시했으며, 사회민주당은 계급투쟁과 근로자참여를 이상으로 했다.

1939년에 정부는 기독민주당-사회민주당 대연정 정부였다. 다음으로 중요한 사회적 대화 기구들이 설립되는 경제재건기(1945~1960)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1945년 노사 양자 구도인 노동재단(STAR)이 설립됐다. 정부는 제한된 임금정책을 펼치면서 임금인상을 매우 강하게 제한했다. 1950년 노・사・정 3자 구도인 경제사회위원회(SER)가 설립되었다. 정부의 임금인상 억제 정책은 계속되었지만 이후 경제 상황이 급속도로 회복되면서, 노동력이 부족해 임금억제가 제대로 안되고 실제 매년 5~10%씩 임금이 인상됐다.

세 번째로 사회보장 시스템 확립기(1945~1975)가 있다. 이 시기에는 노사의 참여로 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 대부분의 사회보장 시스템이 마련되었다. 실업급여의 경우 실업 직전 임금의 80% 수준까지 지급하고 있다.

네 번째 시기는 바세나르 협약 체결 직전의 기간인 소위 황금기(1960~1973)와 오일쇼크기(1973~1980)이다. 1960년대 이후 노사간 임금 자율결정 분위기 확산 및 단체교섭의 분권화로 인해 임금인상이 진행되고 결국 인플레이션이 확대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3년 제1차 오일 쇼크로 실업률이 5~6%, 1979년 제2차 오일 쇼크로 실업률이 12~14%로 급등했다. 당시 네덜란드 전체 근로인구가 550만 명 정도였는데, 1차 오일 쇼크 직후 실업자가 25만 명으로 증가했고, 2차 오일 쇼크 후 실업자가 85만 명으로 급증하면서 바세나르 협약으로 이어지게 됐다. 노사가 비용을 부담하는 사회 시스템에 재정문제가 발생했고, 정부 또한 부담이 커지면서 예산부족과 재정적자 문제가 발생했다.

다섯 번째 시기는 사회협약기(1979~1982)이다. 1979년 노사 간 최초의 협약이 체결되었는데 노사 대표자들은 사회적 합의를 했으나, 하위의 섹터 멤버들이 동의를 하지 않았다. 이후 기업 파산이 증가하면서 국민들 대다수가 산업구조 변화가 시급하다는 데에 대한 인식을 가지게 됐다.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은 물론이고 2003년의 임금인상 억제에 관한 사회협약 체결에 이르기까지 네덜란드의 노동계는 유연안정성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동계가 이와 같은 적응적 조합주의를 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지?

바세나르 협약(Agreement of Wassenaar, 1982)은 간단히 정리하면 적정임금 수준 유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노동력 재분배에 대한 협약이다. 바세나르 협약은 노사 간 “신뢰”를 보였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으며, 노사가 같이 경제회복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바세나르 협약은 이후에 이루어진 모든 협약의 기초가 된다고 평가되고 있다. “사회협약의 어머니”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1982년도에 보수 정부가 집권했다. 노동조합은 항상 노동당과 협조했지만, 대량실업 등 사회・경제적 상황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당시 네덜란드 노총 위원장이었던 빔콕(Wim Kok)은 일자리 확보와 사회보장 유지를 위해 보수정부와 협력했다. 당시 평균 주 40시간 근무였는데, 섹터별*로 38, 36, 35시간으로 단축됐고, 근로시간 단축은 임금감소를 가져오므로 섹터별로 반발도 있었다.(편집자 주 : 섹터(sector)는 전국단위가 아닌 업종별 산업별 단체교섭 단위를 말한다.)

바세나르 협약 체결 이후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노동시장이 성장하면서 노사관계의 분권화 현상이 더욱 심화됐다. 임금인상 등의 문제에 대해 정부는 적극적으로 개입・조정(control)하고 싶어했지만, 노사는 양 당사자의 문제로 인식했다. 1996년 노동재단에서 노동의 유연성과 안정성 모두를 고려한 합의를 했으며, 이 합의에는 노총(FNV)도 참여했다(1996 Flex Agreement : flexibility and job security). 이 합의 이후 사회보장제도 유지와 운영은 사회적 파트너인 노와 사의 역할이었는데, 정부 관리 아래에 있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1990년대에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증가하고, 청년, 고령자 등 새로운 인력이 노동시장에 유입되면서 고용률이 매우 크게 증가했다.

2000년에서 2005년에 이르는 시기에는 연금 개혁 등 사회보장제도 재편, 고령화, 노동력 감소 등이 원인이 되어 예상보다 심각하게 네덜란드의 경제가 어려워졌다. 그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은퇴연령이 계속 늦춰져 왔다(57세→ 65세→67세). 그 사이 네덜란드에서는 안정성 보다는 유연성이 더욱 확대되면서 유럽에서 가장 고용 유연성이 큰 나라가 되었다.

이로 인해 사회보장제도가 적용되지 않는 자영업자 등이 10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2013년 사회협약(2013 Social Agreement)은 노동시장과 노동법, 사회보장제도에서의 노사의 역할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최근 네덜란드에 신정부가 출범하면서 연금문제 등을 논의하려고 하지만, 노사 간 입장차이가 너무 커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노동조합과 사용자단체가 산하 노동조합이나 산하 기업들에 대해 확실한 통제력을 갖추고 있지 못한 경우 사회적 합의를 이행하기 어렵게 된다. 2013년 사회적 협약과 이행 과정에서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반발이 많았을 텐데, 노총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켰는지?, 반발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조율했는지?

사회적 대타협이 있기 전에 노동조합 내부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2009년 연금 관련 합의가 있었는데, 이에 대한 반발이 커서 네덜란드 노총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사임하는 등 노동조합 간, 조합원 간 관계가 매우 악화됐다. 2009년 연금 협약 당시에더 네덜란드에서 제일 큰 1, 2노조가 반대하고, 작은 노조들은 연금 개혁에 찬성해서 노동조합 간 갈등 초래되기도 했다. 노총 입장에서는 1, 2 노조의 동의 없이는 협약이 이루어질 수 없어서 내부적으로 개혁 및 합병이 일어나면서 노동계 내부의 세력 구도가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다.

네덜란드 노동조합은 네덜란드 노동조합총연맹(FNV), 기독노동조합연맹(CNV), 사무관리직노동조합연맹(VHP) 등 3개의 주요 상급단체가 있으며, 일반노동조합연맹(AVC), 공공부문근로자연합 등이 1998년 네덜란드 노총과 통합되었다. 네덜란드 노총은 조합원들을 끊임없이 설득해야 했다. 2013년 사회적 협약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였기 때문에 당시에는 오히려 조합원들의 지지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노조가 임금인상 자제에 동의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네덜란드에서도 특히 임금인상 억제와 관련하여 총연맹이 조합원들의 동의를 얻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떠한 논리로 조합원들을 설득할 수 있었는지?

네덜란드는 ➀ 전쟁 후 노사가 힙을 합한 경제재건의 경험이 있었고, ➁ 사회보장의 유지 및 재정악화를 경계해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다. 또한 ➂ 대량실업, 청년실업의 심각성을 경험했기 때문에 임금인상보다는 일자리공유, 노동재분배 등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상당수의 조합원들이 공감하고 있다.

물론 네덜란드도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항상 임금인상을 주장하지만, 고용 확대와 임금인상은 배치되는 측면이 있고, 네덜란드에서는 상대적으로 고용 확보가 더 중요하다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합원인 근로자들도 그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