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인교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우리 정부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이 한일 관계 및 한미일 동맹질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되는 가운데, 8월 28일 예상과 같이 일본은 우리나라에 대해 백색국가(수출시 통관우대 적용 국가) 제외를 공식시행하였다.

한일이 상대국을 수출우대 그룹에서 제외함에 따라 향후 기업들은 수입시 번거로운 통관절차를 거쳐야 한다. 경우에 따라 통관이 보류되면서 부품 확보에 차질이 발생할 것이다. 일본보다는 우리나라 업체에게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부품소재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 기업이 거의 없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핵심첨단소재 다수를 일본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공급사슬(GSC)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갖가지 부작용이 우려된다. 시스템반도체와 같은 차세대 첨단산업 발전에 대한 차질은 확실해질 것이고, 그동안 국내에서 조달받았던 부품도 일본산 소재부품을 확보하지 못해 생산차질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대기업에 조달하는 1-3차 벤더는 자사 생산활동에 투입되는 주요 원부자재 조달경로를 파악하고 있으나, 이들 업체에 납품하는 중소기업들의 일본산 부품소재 사용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일본 수출규제 피해 대책을 여러 차례 발표했다. 우선 재정을 풀어 피해기업을 지원하고, 부품소재의 탈일본화와 국산화를 달성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2천억원에서 시작된 지원액은 1조원으로, 최근에는 5조원대로 늘어났다.

회의가 거듭되고 새로운 대책을 발표할 때마다 지원액이 늘고 있다. 지난 20년전에 특별법으로 부품소재 국산화를 통해 상당한 실적이 있었지만, 첨단제품에 필요한 소량의 첨단소재 모두를 국산화하는 것이 과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과연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없고, 일본에 뒤지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여주는 대책 발표에 치중하는 듯 하다.

첨단소재는 과학이라고 한다. 재정지원으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빠른 경제성장과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으로 한일 양국간 수출액과 경제규모 격차가 상당부분 줄어들었지만, 기초과학 측면에서는 한일 격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일본은 기초과학분야에서 2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지난 100년 이상에 걸친 과학기술의 축적 역사를 갖고 있다. 과학분야에서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일본과 기존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적대적 관계로 기술독립을 외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한일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사성이 많은 국가일 뿐 아니라 한미일 동맹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중국의 개방 이후 우리나라가 중국의 부상과정에서 많은 경제적 이익을 누렸지만, 현재 진행되는 미중 무역전쟁과 미국의 신경제냉전질서 추구,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 등으로 인한 한반도 불안정 등을 고려하면 현재의 강대강 한일 관계를 지속해서는 안된다.

남북 및 북미정상회의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정세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중간 환율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다가 일본과의 갈등까지 겹쳐지게 되면 우리 경제에 대한 리스크는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정부에서는 일본계 자금이 빠져나가도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 대한 글로벌 금융기관의 전체 여신규모 2,894억달러(2018년 말) 중 일본계는 563억달러로 15.6%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일본계 금융 철수시 컨소시엄 형태로 국내 투자한 다른 외국계 금융기관 투자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사상 최대치인 4,000억달러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지만, 국제결재은행(BIS) 기준으로 보면 적정치보다 700억 정도 부족하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 환율이 1,200원대로 오르고, 주가 종합지수가 20여년전 수준인 1,900대로 빠지는 것 자체가 일본 수출규제에 우리나라 금융시장이 취약함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WTO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무역분쟁이 악화될 경우 2022년 한국의 실질 GDP는 3.34%나 감소할 수 있을 것으로 나타났다.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국제통상환경이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중 대외의존도가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에게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될 수 있다. 도하개발의제(DDA) 협상 중단과 미국의 탈퇴 위협으로 세계무역기구(WTO)의 위상이 약화되고 있다.

올 연말이면 상소기구 위원 부족으로 WTO 분쟁해결기구가 사실상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미국의 세계통상환경 재편 전략과 맞물려 있다. 국제통상의 무질서(chaos) 시대가 되고 있다.

새로운 국제통상체제가 확립될 때까지 지역통상체제와 FTA 무역협정이 국제통상을 규율하게 될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우리나라가 협력할 수 있는 국가를 늘려야 한다. 일본과 적대적 관계로는 동아시아 경제통합은 가능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와 입장을 같이 할 수 있는 국가가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정치권과 정부관계자는 물론이고 시민단체들도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이성적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는 외교적 해법을 모색함으로써 ‘강대강’ 악순환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되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 방안을 찾아야 하고, 강제징용 당사자와의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일본과 ‘정경분리’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지난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과거사 문제로 갈등이 끊이지 않았으나, 양측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정치적 관리체계를 유지해 왔고 정경분리 원칙이 적용되어 왔다. 그 결과 정치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양국 기업과 경제계 교류는 확대심화될 수 있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을 이유로 일본이 수출규제를 한 것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GSOMIA를 종료하기로 결정한 우리 정부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GSOMIA 종료는 안보 ‘자해행위’나 다름없다.

이제 한일간 갈등요인의 대부분은 표면에 드러났다.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상황도 아니고 서로 주고받으면서 타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손실이 뻔한데도 반일을 고수하면서 타협하지 않는 것은 국익을 해치는 일이다. 그리고 타협을 양보나 변절로 봐서도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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