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남규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전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은 과연 누구일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두말의 여지없이 세계적인 유통기업인 월마트이다. 월마트는 2018년 무려 616조원이라는 매출액을 기록하였다. 물론 유통업과 제조업 사이에는 매출액을 일으키는 사업속성이 상당히 다르지만, 2등 기업의 매출액이 약 300~400조원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과히 압도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전세계 유통업에서 주목할만한 또 다른 기업은 1995년 전자상거래 사업으로 출발한 아마존인데, 아마존은 창업 후 불과 25년만인 2019년 올해 매출액이 3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아마존의 2016년 매출액이 148조원이었지만, 2018년에는 불과 2년 만에 매출액이 무려 280조원으로 두 배 가까이 성장하였다.

한국 유통산업을 대표하는 기업 중의 하나인 이마트의 2018년 매출액이 약 20조원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월마트와 아마존의 규모는 한국 기업들에게는 꿈 같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기업들이 월마트와 아마존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놀랍게도 이들의 매출액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세계 최대 매출액이라는 월마트의 규모와 유통산업의 역사상 매출액이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아마존의 외형에도 불구하고, 월마트와 아마존은 한국기업들이 겪고 있는 각종 규제로부터 너무나 자유롭다는 것이다. 오히려 월마트와 아마존은 미국 내에서 특정지역에 새롭게 출점 하겠다는 발표를 하면, 해당 지역 지자체로부터 한국 기업들은 상상하기 조차 어려운 다양한 인센티브를 받는 경우도 많다.

한국 유통산업은 글로벌 기업들과 비교하면 아직도 성장과 육성이 필요한 분야이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서 100조원대 이상의 매출액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서비스와 채널을 창의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역량과 경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따라서 유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규제 혁파는 물론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가 대규모 유통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은 걱정스럽기 그지 없다. 지난 9월 한국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9월 국회에서 ‘을지로 민생 현안회의’를 열어서 복합쇼핑몰 출점을 규제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지구단위계획 수립 지침’을 개정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지자체가 도시계획을 세울 때 해당 지자체 행정구역 중에서 특정 지역에 대해서는 대형 유통점이 들어오는 것을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는 계획이다. 뿐만 아니라, 야당이 반대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하는 것 대신에, 국회 통과가 필요 없는 훈령을 고치는 편법으로 지방자치단체에게 복합쇼핑몰이나 대형마트 출점을 행정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전통시장이나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정작 정부 및 여당의 관계자들에게는 국내의 대표적인 유통기업들이 중국에서 처참하게 실패하고 엄청난 손실을 입었던 사실은 전혀 기억에 없는 듯 하다. 제조업과 마찬가지로 유통기업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매출과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그리고 글로벌 유통산업은 대부분 매출액 100조원을 능가하는 대기업들이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치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주장하는 골목상권이 무너지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장기적인 내수침체와 온라인 쇼핑의 급속한 성장이다. 한국 경제는 2017년 9월을 정점으로 지금까지 24개월째 경기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통계지표를 분석해 보면 자영업자들은 2019년 2분기가 최근 10년 동안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직원 없이 사업주 혼자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 월평균 사업소득이 약 228만원으로 지난해 대비 무려 12.5%나 감소하였다. 직원을 고용한 자영업자 역시 월소득이 4.7%가 감소하여 역대 최저치이다. 내수 시장 침체가 위기 수준을 넘어서 약 60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을 생존의 기로에 서게 만들고 있다.

대형마트가 전통시장을 위협하는 요인이 아니라는 것은 숫자로도 쉽게 입증된다. 전자상거래가 출범하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에는 소매판매액에서 전통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7%로, 대형마트가 차지하던 24%의 비중보다 높았다. 그러나 2017년에는 대형마트가 15%, 전통시장이 11%로 급격하게 나란히 감소한 반면, 온라인 쇼핑은 같은 기간 동안 13%에서 29%로 무려 2배 이상 성장하였다. 특히,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 대형마트의 숫자는 전체 24개로 변화가 없었지만, 이들이 차지하는 매출비중은 오히려 약 8%정도 감소하였다.

국내 유통산업을 오프라인과 온라인 판매액으로 양분해서 분석해도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국내 시장에서 대형마트와 편의점·백화점을 합친 오프라인 판매액이 이미 온라인 매출액에 훨씬 못 미치는 실정이다. 국내 대형마트 1위인 이마트는 지난 2분기에 1993년 창사 이래 첫 적자를 기록했고,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지난 10월에는 이마트가 비정기 인사를 통해서 기존 임원들의 상당수를 교체한 것은 물론이고, 일부에서는 유통산업에 종사하는 직원들 대다수가 연말 이전에 실직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유통산업을 대표하는 대형마트들의 상황이 이처럼 풍전등화와 같은데도 불구하고, 현재 대형마트들은 전통시장 인근에 신규 출점을 막는 ‘등록제한’과 의무휴업일 지정·특정시간 영업금지 등 각종 규제를 받고 있다.

유통업계에 닥쳐오는 생존위기를 절감하고 있는 경제단체들은 정부의 최근 결정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런 정책들은 유통업계를 힘들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궁극적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도 높다. 현재 적용 받고 있는 규제들의 실질적인 효과도 매우 강력하다. 서울에서는 복합쇼핑몰을 지으려고 2013년 서울시로부터 토지를 매입했지만 6년째 첫 삽도 뜨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6년 전에 건물까지 완공을 마쳤지만, 각종 규제로 인해서 아직도 개장 조차 못한 곳도 있다.

전세계가 유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각종 혁신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기술발전에 발 맞추어 각종 규제들을 철폐하기 위해서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 유독 한국 정부만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라는 잘못된 명분을 내세워서 대표적인 유통기업들을 옥죄는 심각한 정책적 오판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히려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창조적 협업을 통하여 상호가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서는, 대형마트와 전통시장이 적극적으로 변신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과 규칙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