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

한국경제는 고령화와 최저 출산율의 인구구성 변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와중에 5년마다 평균 성장률이 1%씩 낮아지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들어 소주성이라는 광범위한 노동시장 개입으로 인한 충격으로 일자리 파괴와 특히 자영업자들의 생존기반을 위협하는 와중에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전대 미문의 위기가 겹치고 있다.  

이 글로벌 판데믹의 충격으로 BC (Before Corona)와 AC (After Corona)가 유행어가 되고 있다. 코로나 이후의 새로운 세상은 우리가 그 이전으로 그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 즉 뉴 노멀 (New Normal)에 대해 수용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하고 있다. 뉴노멀의 하나로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90% 경제”를 들고 있다. 많은 산업에서 수요가 10% 이상 줄어든 경제를 뜻한다. 정부의 강제 격리 조치가 해제된 중국이나 미국의 일부 주와 유럽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하면서 많은 산업에서 수요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는 많은 산업에서 한계 기업의 퇴출과 고용의 감소를 의미한다.
바이오 산업과 정치권에서는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에 큰 희망을 걸지만 과거 코비드 (Covid) 타입의 18번의 전염병의 역사에서 백신은 없었다는 사실과, 치료제가 없는 바이러스 전염병이 2차 감염의 확산이 없었던 적이 없다는 전염병의 역사는 우리가 최악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과거 30년간 세계 경제의 위기 이후의 회복은 V자 아니라 L자 회복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고용이 원래 수준으로 되돌아 온 것은 미국의 경우 바이러스 사태 직전으로 10년 이상이 걸렸고, 유럽은 그 때의 고용참여율에 이르지 못했다. 한국이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일인당 국민소득 순위에서 44위를 다시 회복한 것은 2014년으로 무려 17년의 세월이 걸릴만큼 경제 위기의 내상은 깊다. J.P 모간은 2021년 기업의 수는 2019년의 수준보다 20% 아래일 것으로 전망해서 주식시장과는 전혀 다른 전망을 하고 있다. 도이치 뱅크는 거의 모든 경제를 셧다운 시키는데 21일이 걸렸지만 이를 회복하는데는 이 기간의 4배에서 10배가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고, 미국의 연준 의장 파웰은 미국 경제가 2021년말까지 회복을 시작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바이러스 불확실성이 제거된다고 해도 이미 중국의 부채와 SOC 투자에 기반한 성장이 한계에 다다르고 경제성장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고, 2019년 말부터 이미 급격하게 마이너스 경제로 추락하는 일본, 독일, 그리고 장기 경제팽창에서 수축으로 전환된 호주 등 주요경제의 동향을 보면 2010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에 대규모 양적완화를 기반으로 팽창하던 글로벌 경제가 미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에서 공급과잉으로 위험한 신호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도 V자 회복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기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등에서 공급과잉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다.

최근 미국의 Tufts 대학은 각국이 원격 근무에 얼마나 잘 준비되어 있는가를 그 나라의 경제의 디지털 플랫폼화 정도 (전자 상거래, ICT 인프라,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와 디지털 거래를 지원하는 전자 지불 시스템의 수용 정도)와 디지털 거래의 수요가 급증했을 때 그것을 잘 처리할 안정된 디지털 기반이 있는지를 갖고 각국을 평가해서 발표했다.  

한국은 디지털 플랫폼화와 안정성 면에서 선두 국가에 해당하는 반면 일본은 한국에 비해 처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일본이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가 크게 늘면서 인구당 사망자 수에서 한국을 추월하는데는 아베의 오락가락한 정책의 실패도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한국만큼 하지 못하는 문화적 기술적 취약성도 거론된다. 일본의 대기업의 수직적 문화와 집단주의석 사고가 재택근무를 꺼리게 하고 선진국 중에서 전자적 지급결제의 수용에서 가장 낮은 현금 사회가 사회적 거리를 한국처럼 수용하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유럽에서 가장 심하게 코로나 바이러스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이탈리아도 디지털 경제 인프라 면에서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인 것도 그 막대한 피해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처럼 이제 디지털 경제는 바이러스 사태 중에 건강과 안전의 기술이자, 사회적 거리를 수행하여 경제의 충격 흡수 인프라로 인식 되고 있다.

미국과 선진국에서 본격화한 대량실업은 이제 한국의 현실로 전이 되고 있다. 항공과 해외 여행 산업의 대량 구조조정은 물론이고 석유가격에 관련이 깊은 해외 건설, 플 랜트, 중장비 산업, 조선산업, 그리고 비싼 내구제에 해당하는 스마트폰과 자동차 등의 전세계적 수요 감소는 피할 수 없고 이에 따른 구조조정과 대규모 실업은 현실이 되고었다.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으로 파괴된 일자리를 길거리 청소나 사회복지의 공공 아르바이트 자리로 대체하는 것도 바이러스 감염 위험으로 당분간은 불가능해졌다. 그렇지 않아도 포스트 케인지안적인 시장개입을 즐겨하는 진보좌파적 성향이 강한 문재인 정부가 디지털 경제로 가는 ‘한국판 디지털 뉴딜 정책’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우선 55만개의 일자리를 정부가 만들겠다는 “뉴딜”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일자리는 일감에서 만들어지는 ‘파생 수요’다. 생산이 있는 곳에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산업을 만든다는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은 역사적으로 성공한 적도 없는 괴담일 뿐이다. 지금까지도 정부는 소주성으로 파괴된 일자리를 정부가 만든다고 노인 아르바이트 자리만 양산해 왔다. 그 일자리들은 생산과 대부분 무관한 일자리로 포장한 고령층을 상대로한 현금 복지일 뿐이다. 민간의 일자리는 그것을 통해 생산이 이루어지고 부가가치가 생산되지만 정부의 일자리는 그러한 시장의 원리와 달리 가치파괴를 서슴지 않는 것이다.

물론 케인지안적 정책으로 정부가 수요를 일부 창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뉴딜 정책은 대부분 장기 불황의 타개책이다. 대공황은 1929년에 시작해서 30년대 말까지 지속된 10년의 장기 불황을 타개위한 정책이었다. 그런데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얼마나 장기적인 불황일지 아무도 모른다. 여기에 정부의 팽창재정과 양적완화로 이미 통화량이 급팽창하고 있는데 과연 과거와 같은 뉴딜이 필요한지는 의문이다. 경제학자들은 뉴딜 정책이 대공황을 탈출시켰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문을 삼고 있고 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뉴딜 정책을 사랑한다. 정부가 커지는 좋은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첫째, 경제성없는 디지털 “인형 눈 붙이기” 일자리를 만들어서는 포장만 디지털 뉴딜이지 현금복지의 일자리 눈속임으로, 젊은이들이 경험과 기술의 습득이 없는 그래서 미래 희망도 없는 시간의 낭비가 될 수 있다. 정부 주도의 재정 확대를 정당화하는 뉴딜 정책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원칙과 정부의 절제가 필요하다. 부가가치가 투입 재원보다 적은 재정 집행은 부의 파괴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통령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1-2주만에 경제성 검토도 없이 5조 이상의 디지털 뉴딜 정책을 성안하는 것은 바이러스를 빙자한 정부 팽창과 공무원의 영혼 없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둘째, 정부는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기업 복지를 창출해서는 안된다. 위기는 민간에게 위험이기도 하지만 구조조정의 기회다. IMF 외환위기 때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기업들이 그 이후에 글로벌 성공기업으로 부상했다. 그런데 이번 위기를 구조조정이 아니라 정부 돈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이 늘수록 한국경제는 더 빨리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으로 줄달음 칠 것이다. 즉 민간이 할 것과 정부의 할 것을 뚜렷하게 구분해야 한다. 정부는 정부 자체를 효율화하는 디지털화, 정부가 최종 수요자인 국방이나 사회 간접자본의 스마트화 프로젝트에 국한해야 하고 미래 기술 개발 등의 명목으로 민간 시장의 교란행위를 해서는 안된다.
 
셋째는 혁신과 규제개혁을 사회적 타협에 미루는 방식은 반드시 실패한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합의란 이해당사자간의 조정을 뜻했고 언제나 국민과 소비자는 소외된 정치적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개혁에 실패해왔다. 타다라는 새로운 교통 혁신 기업의 혁신을 봉쇄한 결정도 교통 소비자들은 완전히 소외된 채로 택시업계의 완력과 일부 경쟁회사들의 카르텔적 결정을 정치권이 추인한 꼴이다. 원격진료를 의사와 병원들과 사회적 타협을 한다면 반드시 실패한다. 따라서 혁신의 최종적인 선택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소비자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믿음과 원칙에서 정부의 책임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넷째는 정부가 새로운 산업을 만든다는 개발도상국의 도그마에서 빨리 탈피해야 한다. 87년 체제 이후의 역대 정부의 신산업 육성정책은 모두 공염불화하고 있다. 이미 세계 11-12위의 큰 경제에서 정부가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은 없다. 그것은 민간 기업들의 몫이다. 좀비 경제와 큰 정부의 유혹을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해서는 안된다.
 
디지털 경제로 가는 길은 아주 간단하다. 정부가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진입규제를 푸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유동자금이 넘쳐나고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청년들이 넘쳐나고 세계 시장을 헤집는 기업들이 즐비한 나라다. 그런데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이해집단을 넘어서 규제개혁을 하는 일이고, 전세계에서 우버와 같은 차량공유와 구글지도가 모두 안 되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은 정부가 할 일은 새로운 재정확대의 뉴딜정책이 아니라 따로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