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

우리 사회에 ‘엄벌주의’라는 유령이 떠돌고 있다. 특히 안전사고에 대해 이념적 진영에 관계없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원래 정치사조로서의 엄벌주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범죄를 발생시키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처벌이라는 즉흥적이고 현상적인 접근에 의지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인 문재인 정부에서 어느 때보다 엄벌주의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유럽연합 국가 중 안전사고에 대해 엄벌주의를 택하고 있는 나라는 영국 외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엄벌주의 입장을 취하지 않고도 산재예방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국가들이 많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편, 영국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해당하는 법인과실치사법이 사망재해 감소에 효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해서는 영국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법인과실치사법을 도입하기 전부터 이미 사망재해율이 낮았다.

이 법을 도입하고 나서 비로소 획기적으로 낮아졌다는 주장은 사실과 명백히 다르다. 그리고 영국의 낮은 사망재해율은 엄벌보다는 전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높은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는 산재예방행정조직에 힘입은 바 크다. 이러한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면 법인과실치사법이 탄생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재예방 여건과 인프라는 이러한 영국과는 사뭇 다르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처벌이 만능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효과는 거두지 못하고 부작용만 키울 수 있다.

게다가 지금 주장되고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영국 법인과실치사법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강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경영진 형사처벌, 법인 형사처벌, 영업정지 등 행정제재, 징벌적 손해배상 등 가히 ‘제재의 백화점’이라 할 만하다. 4중 제재라고 할 수 있다. 제재 하나하나도 아주 강하다.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문을 닫아야 할 곳이 속출할 것 같다. 법의 준수가 목적이 아니라 제재가 목적인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이유이다. 이 대목에서 처벌수위가 끊임없이 높아진 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약자들인 경우가 많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찬성론자들이 산업재해를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예방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고 깊은 고민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처벌을 강화하면 사망재해 등 산업재해 문제가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산업재해 문제를 단순히 기강과 의지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하다. 그러나 처벌수준을 높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수범자에게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법정형을 올린다고 해서 산재예방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까.

기업을 엄벌에 처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고 헌법원칙은 소홀히 여기고 있다는 것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큰 문제이다. 죄형법정주의는 민주주의 산물이자 법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준수하여야 할 철칙이다. 명확성의 원칙, 비례의 원칙과 같은 헌법원칙을 준수하지 않고는 정의와 공정을 주장할 수 없고 산재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엄밀히 따져보면, 우리나라의 국민들이 맹목적으로 ‘엄한’ 처벌을 지지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국민들의 사망재해에 대한 분노의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다. 진짜 바라는 건 정작 비난받아야 할 사람이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정의로운’ 처벌일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중대기업처벌처벌법 또한 반드시 헌법원칙에 입각하여야 한다.

아무리 의지와 역량이 강한 기업이라도 법에 지킬 수 없는 내용이 많다면 처벌을 강화하더라도 산업재해 감소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소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은 법의 준수를 도모하기보다 체념 또는 자포자기를 하는 쪽으로 대응할 것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이 일차적으로 강한 처벌의 대상이 될 공산이 크다. 게다가 이러한 법은 산업재해 감소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 채 행정기관의 자의적인 법집행의 좋은 재료가 될 뿐이다. 규범력과 실효성을 갖춘 입법을 하는 것이 처벌 강화보다 시급하고 중요한 이유이다.

진정으로 근로자의 사망재해를 대폭 줄이려면 현장에서 산업재해가 왜 발생하는지, 도급작업에서의 산업재해는 어떤 메커니즘으로 발생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진국은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냉철하게 짚어보고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엄벌주의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정치인과 행정가가 이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엄벌주의는 근본적인 해법으로 향하는 진지한 노력을 포기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자녀에게 공부할 여건을 제대로 만들어 주지 않으면서 공부 못한다고 심하게 매질을 하는 부모 밑에서 공부를 잘 하는 자녀가 나올 수 있을까. 매질이 분노 해소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자녀의 학습능력 향상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간이 다소 걸리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산재예방 역량을 높이는 여건을 충실히 조성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엄벌에만 기댄다면 산업재해 감소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 채 우리사회에 많은 비용과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 다른 복잡한 사회문제와 마찬가지로 산업재해 문제 역시 냉철한 이성 없이 따뜻한 가슴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선의에 찬 우행(愚行)은 악행으로 통한다”는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