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곽관훈 선문대 법·경찰학과 교수]

2006년 4월 27일 UN의 코피아난 사무총장과 미국 CalPERs, 영국대학교원연금(USS), 미츠비시UFJ신탁은행 등 전세계 30여개 금융기관 대표들이 뉴욕증권거래소에 모였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향후 투자대상을 선정함에 있어 ESG((Environmental, Social, Governance) 요소도 함께 고려하겠다는 ‘사회책임투자원칙(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에 서명하기 위해서였다. 국제사회에서 ‘ESG’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후 ‘ESG’는 ‘기업의 사회적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이나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SRI)’와 같은 기업경영 및 투자의 새로운 트렌드가 지향하는 목표로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연기금 등이 기업의 재무적 정보 외에 ‘ESG’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언뜻 보면 수익보다는 환경·인권등 사회적 공익을 고려한 투자로 전환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국민연금의 예를 들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보험료는 국민이 노후소득보장을 위해 납부하는 것이고, 따라서 국민연금기금을 운용하는 자가 추구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수익률제고이다. 그럼에도 장래의 수익을 희생하고 현재의 공익을 추구하는 기금운용을 한다면 수탁자책임을 위반하는 것이다. 즉,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가 기금의 안정성과 수익성을 희생하고 공익성을 목표로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 헌법재판소 판결(헌재 1996.10.4. 96헌가6)도 이러한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ESG를 고려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수익률제고를 위한 투자방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연기금처럼 대규모 기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는 기본적으로 패시브 운용(passive management)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액티브 운용(active management)을 선택하는 경우 대규모 주식을 매각하는데 따른 수수료부담이 클 뿐만 아니라, 일시적으로 많은 물량이 시장에 방출되어 큰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연기금이 패시브 운용을 하는 경우에는 매매를 통한 단기적 차익을 얻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대상을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연기금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많은 수익을 얻고 있지만, 환경문제나 인권문제로 사회적 비난을 받는 기업은 리스크가 큰 투자대상이다. 환경문제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난이 매출감소로 이어지고, 대규모 손해배상의 부담은 비용증가 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연기금등 기관투자자가 ESG를 고려하는 것은 윤리적 차원의 접근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 변화를 고려한 투자방식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보다 먼저 ESG를 고려한 투자가 성장하였던 미국의 논의는 이러한 점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1997년 미국의 SRI 운용회사인 ‘Calvert Investment’가 연금자산 운용을 하에 있어 환경, 지배구조 등을 고려하여 투자대상을 선정하였다. 이러한 행위가 수익자의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수탁자책임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미국 노동부는 SRI가 다른 대체적 투자수단보다 수익률이 낮지 않다면 수탁자책임에 반하지 않는 다는 지침(Calvert letter)를 발표하였다. 즉, 수익률 제고의 관점에서 재무적 정보 외에 ESG 요소를 추가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연기금등이 ESG를 고려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수익을 얻으면서 환경·사회·지배구조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 매우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수익성이 저하된다면, 자산을 맡긴 가입자의 이익을 희생시키는 것으로 수탁자책임 위반의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국민연금이 투자판단에 있어 ESG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 국민연금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제고하면서 ESG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는 행위이다. 일본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기금운용을 투자전문가에게 맡기고, 전문가들이 정부의 영향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투자판단을 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구축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은 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이 부족하고, 투자전문가도 아닌 위원들이 아무런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 상태에서 투자판단을 하고 있다. 이러한 지배구조 하에서 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추구하면서 ESG요소를 고려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기금운용에 있어 ESG경영평가를 활용하기에 앞서 기금운용의 지배구조개선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지배구조 하에서 ESG경영평가는 본래적 목적이 아닌, 정책적 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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